독거를 처음 시작한 건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아버지가 5년 일정으로 해외 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오피스텔 방 한 채를 남기곤 떠났다. 나만의 공간에서 혼자 산다는 설렘이 석별의 아쉬움을 채우고도 남았다. 혈기 넘치던 시절 아닌가. ‘청춘사업’을 불태운다는 열망으로 거금을 들여 마트에서 21년산 양주와 이름이 그럴듯해 보이는 와인, 샴페인과 칵테일 여러 병을 사와 조그마한 식탁에 주르륵 진열했다. 이제 절세미인과 잔을 기울이는 일만 남았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혼자 사는 남자’의 현실은 잔혹했다. 남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여자가 혼자 사는 여자라지만 여자들은 혼자 사는 남자에게 별다른 메리트를 못 느끼는 듯했다. 핑크빛으로 가득할 줄 알았던 오피스텔은 오라는 여자는 안 오고 시커먼 사내놈들만 제집처럼 들락거리는 아지트로 전락했다. 거금을 들여 야심 차게 진열해둔 술은 한 달도 안 돼 빈병이 돼 버렸다. 한 방울도 여자 입에 들어가지 못한 채.
무참히 깨진 핑크빛 로망의 빈자리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이었다. 늦은 밤 혼자 들어와 어둠 깔린 집에 불을 켤 때나 시커먼 어둠 속 침대에 혼자 누워 있을 때면 공허가 밀려왔다.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방에 틀어박혀 삼일 밤낮 식음을 전폐할 때나, 몸살이 나 3일 동안 침대에 누워 끙끙댈 때도 위문 온 친구들이 떠난 뒤론 늘 혼자여야 했다. 5년의 ‘독거생활’에서 배운 건 오피스텔 공과금이 무지 비싸다는 사실과, 빨래하고 청소를 최대한 빨리 하는 방법 정도였다.
대한민국에 혼자 사는 453만 명(2012년)은 모두 지독한 외로움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혼자 살고 싶어서 집을 나온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 본가가 학교나 직장과 멀거나 하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1인 가구 구성원이 됐을 것이다. 누군들 가족이 해주는 따뜻한 밥 먹고 싶지 않겠는가만, 먹고 살려다 보니 좁은 방에서 늦은 밤 혼자 햇반을 데울 것이다.
혼자 사는 것도 서러운 싱글족들은 최근 보건복지부 고위 관계자가 저출산 대책으로 ‘싱글세’(1인 가구 징세)를 언급했다는 소식에 발끈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안 그래도 빼빼로데이(11월 11일)에 빈손이라 울고 싶은 싱글에게 정부가 뺨 때려주는 꼴” “결혼하고 싶어도 전셋값이 비싸서 못 하는 사회 구조가 문제라는 걸 모르느냐”는 거센 비난이 쇄도했다. “싱글세 피하려고 다들 결혼하려 할 테니 이참에 빠르게 연인을 만들 수 있겠다”란 자조 어린 무한긍정의 시각도 있었다. 논란이 불거지자 보건복지부가 “농담 차원에서 한 말일 뿐 싱글세 징수 계획은 전혀 없다”고 해명했지만 외로운 싱글들의 분노는 사그라질 줄 모르고 있다.
한국 여성 1명이 가임기간에 출산할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는 1.187명(2013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 중 최하위다. 둘이 만나 하나만 낳고 있으니 다음 세대에는 경제활동인구 1명이 짊어질 노인복지의 무게는 두 배 이상 무거워질 것이 자명하다. 보건복지부 고위 관계자가 농담으로라도 싱글세라는 극단적인 카드까지 언급한 건 그만큼 국가적 위기의식이 절박하다는 반증이겠지만 SNS 민심은 그 방식이 잘못됐다는 걸 확인시켜 줬다.
한국 사회에 비혼 인구가 늘고 출산율이 줄어드는 건 그만큼 국민이 자기 이익에 철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하고 자녀를 키우면서 드는 막대한 지출과 육아 책임에 대한 부담감의 크기가 가정을 꾸리고 핏줄을 잇는다는 정서적 만족과 행복을 넘어서고 있는 시점이 지금 아닐까. 20대 시절 지독한 외로움을 겪은지라 하루빨리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기자도 결혼적령기인 30대에 접어들고 주위에 결혼한 지인들을 보니 결혼과 육아가 두려워졌다. ‘억’이라는 화폐 단위가 너무나도 쉽게 느껴지는 전셋값과 매달 30만 원씩 용돈 받고 사는 남편들의 얇은 지갑을 볼 때마다 “차라리 싱글세를 내더라도 혼자 사는 게 낫나”란 생각까지 드는 현실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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