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오코노기 마사오]한국과 일본도 ‘불일치의 합의’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5일 03시 00분


오코노기 마사오 동서대 석좌교수
오코노기 마사오 동서대 석좌교수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실현됐다. 매우 기뻐할 일이지만 일한 정상회담보다 일중 정상회담이 먼저 열린 것은 결코 환영할 만하지 않다.

정상회담 배경에는 올해 여름 이후 시 정권의 권력기반 안정 등과 같은 요소도 있다. 지금까지 중국 국내에서 일중 간 역사와 ‘영토’ 문제가 내부 권력 문제와 깊이 관련돼 왔기 때문이다.

일한과 똑같은 문제로 약 3년 동안 정상회담을 열 수 없었던 일본과 중국이 어떻게 정상회담을 열었는지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 출발점은 중국과 관계가 깊은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총리와 시 주석의 7월 하순 회담이었다. 후쿠다 전 총리는 10월 말에도 베이징을 방문해 시 주석과 회담했다. 두 차례 회담에서 실무 레벨의 협의가 진행됐고 최후에 아베 총리의 측근인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전보장국(NSC) 국장이 양제츠(楊潔지)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회담했다. 그 결과가 11월 7일 ‘일중 관계 개선을 향한 회담에 대해’라고 이름 붙여진 합의문서였다.

4개항의 문서에는 일중 정치가와 관료의 지혜가 들어가 있다. 쟁점이 된 것은 일한과 똑같이 역사와 ‘영토’ 문제였다. 중국 측은 정상회담 개최 조건으로 아베 총리에게 ①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하지 않는다고 확약하고 ②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를 둘러싼 영토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일본 측은 ‘전제조건 없는’ 회담을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이번 합의문서는 ①에 대해 쌍방이 ‘역사를 직시하고 미래로 향하는 정신에 따라’ ‘양국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곤란을 극복하는 것으로’ ‘약간의 인식의 일치를 봤다’라고 표현했다. 이 ‘정치적 곤란’이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지시하는 것임은 명백하다. 물론 일본 측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명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만약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면 그것은 ‘정치적 곤란을 극복한다’고 하는 ‘약간의 인식의 일치’를 위반하는 것이 된다.

또 ②에 대해 합의문서는 양측이 ‘센카쿠 열도 등 동중국해 해역에 있어 최근 긴장 상태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표현했다. 중국 측은 ‘서로 다른 견해’의 존재를 명기한 것에 만족했다. 간접적이지만 영토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일본 측은 ‘서로 다른 견해’를 ‘긴장 상태’에 한정해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이 항목은 그 대상을 엄밀히 정의하지 않은 채 양측이 ‘서로 다른 견해’의 존재를 인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요약하면 두 개의 문제에 관해 일중 양측은 ‘약간의 인식의 일치’와 애매한 형태의 ‘서로 다른 견해’의 존재를 확인했다. 국제회의에서 잘 사용되는 ‘불일치의 일치’(agree to disagree)를 이룬 것이다.

하지만 그 ‘불일치의 일치’를 토대로 일중은 과거 4개의 기본 문서를 재확인하고 ‘전략적 호혜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고 약속했다. 또 ‘정치 외교 안보대화를 점진적으로 재개하고 정치적 상호 신뢰관계 구축에 노력한다’고 합의했다.

일한 간 역사 문제에는 위안부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극복해야 할 ‘정치적 곤란’ 안에 위안부 문제를 포함하는 것으로 합의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한일조약 등 여러 협정,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재확인하고 ‘정치적 상호 신뢰관계 구축에 노력한다’는 게 가능해진다.

오코노기 마사오 동서대 석좌교수
#APEC#불일치의 일치#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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