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꽃누나’ 떠나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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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옥에게는 어쩐지 멜로적인 슬픔도 천박하지가 않다. 가령 그녀가 드라마 속에서 한 방울 똑 떨어뜨리는 눈물도 하나의 미학으로 승화되고 만다.” 1978년 5월 27일자 동아일보에 실렸던 강우식 시인의 김자옥론이다. 그는 “이 땅의 수많은 여인들의 눈물과 비극을 느꼈다”며 김자옥의 연기에 찬사를 보냈다. 탤런트 김자옥은 누구도 흉내 내기 힘든 멜로 연기의 달인으로 1970년대 안방극장을 주름잡았다. 1975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수선화’에서 첫사랑에게 배신당한 지선 역을 맡으면서 당대의 톱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1990년대 들어 대변신을 시도한다. 불혹을 넘긴 나이에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해 철없는 공주 연기를 선보인 것이다. “아저씨 나한테 홀딱 반했지” 같은 대사를 천연덕스럽게 내뱉은 그는 ‘공주병 이미지’로 두 번째 전성기를 열었다.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휘감고 ‘불치의 전염병’으로 알려진 공주병을 연기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전국적으로 공주병 신드롬이 유행했다. ‘미나공’(미안해 나 공주야) ‘미나자’(미안해 나 자옥이야) 같은 유행어도 등장했다. 1996년 그가 발표한 ‘공주는 외로워’ 앨범은 60여만 장이 팔렸다.

▷그는 연기자로서뿐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뜨겁고 열정적인 여정을 걸었다. 1980년 가수 최백호 씨와 결혼한 그는 파경의 아픔을 겪었지만 1984년 듀엣 ‘금과 은’의 멤버 오승근 씨와 재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2008년 대장암 수술을 받은 뒤에도 그는 오뚝이처럼 재기했다. TV와 스크린에서 다시 건재한 모습을 보여준 그가 어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폐와 림프샘 등에 암이 전이됐다 한다.

▷젊은 시절에는 지고지순한 한국의 여인상으로, 중년의 나이에는 공주병에 걸린 푼수 아줌마로, 환갑을 넘긴 뒤엔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의 유유자적한 ‘꽃누나’로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긴 엔터테이너. 자그마한 체구에 덧니가 살짝 보이는 미소로 폭넓게 사랑받은 친근한 여배우.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생이 좌절하거나 실패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던 스타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꽃누나#김자옥#수선화#공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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