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 놈의 감자를 그리 많이 먹어대는지. 나는 강원도에라도 온 줄 알았다. 영국에서 요리학교를 다닐 때 점심은 실습 때 만든 음식으로 해결했는데 늘 빠지지 않는 게 감자였다. 튀기고, 삶고, 굽고. 질리지도 않는지 매 끼니 감자를 먹었다.
영국 사람들의 감자 사랑은 정말 남다르다. 마트에는 일 년 내내 감자가 있다. 싸기는 또 어찌나 싼지. 내가 본 가장 싼 감자는 10kg에 2파운드였다. 한국 돈으로 3000원 정도다. 종류도 여자 화장품처럼 많다.
영국 사람들이 감자와 붙어사는 이유는 간단하다. 땅은 척박하지, 해는 잘 안 뜨지, 그나마 잘 자라는 게 감자다. 그래서 영국의 감자 요리는 일일연속극과 비슷하다. 비슷비슷한데 조금씩 다르고 매일 나온다. 사람들은 그걸 계속 본다. 게다가 시청률도 높다.
그중에서 매시드포테이토는 특별하다. 황금빛 감자, 사르르 녹아드는 버터, 고소한 우유가 아낌없이 들어가 벨벳처럼 부드럽고 비단처럼 매끄러운 매시드포테이토를 담아주는 어머니의 따뜻한 미소, 머리를 쓰다듬는 아버지의 굵은 팔뚝…. 영국인들은 이런 어릴 적 풍경을 모두 가슴에 품고 산다.
나에게 ‘제대로’ 매시드포테이토 만드는 법을 알려준 이는 이탈리안 셰프 다니엘이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페널티킥을 하늘로 쐈던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공격수 로베르토 바조처럼 꽁지머리를 했던 다니엘은 작은 체구에 말은 빠르고 다혈질에 ‘미친 개’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성격이 괴팍했다. 이탈리아 남자라는 것을 몸소 증명하듯 “어제 클럽에서 여자를 만났는데”로 시작해 “정말 화끈했지”로 끝나는 것이 그의 아침 인사였다. 요리 실력도 바조급이라 업장의 부주방장을 맡았다.
요리학교의 기억을 더듬어 업장에서 매시드포테이토를 만들고 있을 때였다. 매시드포테이토는 레시피랄 게 없을 정도로 간단하다. 오븐에 구운 감자를 ‘푸드 밀(food mill)’이라는 방앗간 맷돌 비슷한 분쇄기에 넣고 곱게 간 다음 버터와 우유를 넣고 잘 섞고 간을 하면 완성이다. 이때 ‘어디 한번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버터를 팍팍 넣어야 제맛이 난다. 우유는 물기를 조절하는 정도로만 쓴다.
그때 나는 ‘버터를 한 조각 더 넣을까, 우유는 이 정도면 괜찮겠지?’ 머뭇거리며 주저하던 중이었다. 됐겠다 싶어 맛을 보는데 헤드 셰프가 성큼성큼 걸어와 내 매시드포테이토를 맛봤다. 그리고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다.
“고무 같아.”
도대체 뭐가? 하는 표정으로 서 있는데 다니엘이 구원투수로 지명되었다. 다니엘은 “네가 매시드포테이토를 망치고 있잖아!”라고 하더니 우유를 냄비에 붓고 뜨겁게 덥혔다. 뜨거운 감자에 차가운 우유를 붓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였다. 그리고 버터를 넣었다. “제발 그만”이란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끝없이 집어넣었다. 버터를 녹이느라 그의 이마에선 땀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내가 넣었던 양의 열 배쯤 되었을까.
맛을 보라고 하여 조심스럽게 매시드포테이토를 떠서 입에 넣었다. 브라보! 따봉! 놀라웠다. 뜨거운 아이스크림 같다고 해야 할까? 부드럽고 고소하고 촉촉하고, 늦은 오후의 낮잠처럼 달콤하고…. 온갖 미사여구가 머릿속에 떠다녔다. 다니엘에게 “사부!”라고 외치며 무릎이라도 꿇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그는 어느새 또 다른 일을 하러 갔기 때문이었다.
클럽에서 노느라 떡진 머리를 묶고 출근할지라도, 눈은 엉덩이를 향하고 입술은 음담패설을 지껄여대도 다니엘의 손은 늘 바빴고 발은 늘 종종걸음이었다. 업장에서 제일 오래, 많이 일하는 이가 다니엘이었다. 맛있는 매시드포테이토의 비결이란 좋은 감자에 버터를 많이 넣는 것이듯 시간과 땀, 그 단순한 조합의 힘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요즘도 매시드포테이토를 앞에 두고 다니엘을 생각하곤 한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필자(32)는 영국 고든 램지 요리학교 ‘탕테 마리’에서 유학하고 호주 멜버른 크라운 호텔 등에서 요리사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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