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농업 선진국으로 만든 것은 기술이 아니라 정신이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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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박인호의 전원생활 가이드]<27>

농업이 6차산업으로 활성화되려면 크기와 시설보다는 농업의 가치에 대한 리더와 구성원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일본 오사카 스기고헤이 농원. 박인호 씨 제공
농업이 6차산업으로 활성화되려면 크기와 시설보다는 농업의 가치에 대한 리더와 구성원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일본 오사카 스기고헤이 농원. 박인호 씨 제공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최근 일본 오사카(大阪) 나고야 일대의 ‘농업 6차산업’ 성공모델을 견학할 좋은 기회가 있었다. 홍천농업인대학이 마련한 연수 행사였다.

6차산업은 도쿄대의 이마무라 나라오미 교수가 1995년 제창한 것으로, 생산(1차) 가공(2차) 유통·관광(3차)을 융·복합(1×2×3=6)한 신개념의 농업을 일컫는다. 이후 2011년 6차산업화법이 시행되는 등 일본은 6차산업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 과제로 채택되어 2014년 5월 ‘농촌 융·복합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으며 2015년 6월 발효된다. 우리 정부 또한 위기에 처한 농업·농촌의 돌파구로 ‘귀농·귀촌’과 ‘6차산업’을 내걸고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기에 비록 짧은 일정(4박 5일)이었지만 일본 연수에 대한 기대감은 자못 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 6차산업의 성공모델을 둘러보며 얻은 값진 교훈은 규모가 크고 잘 꾸며놓은 농원, 직판장, 숙박·체험시설 등의 ‘유형의 것’이 아니라 그들의 농업에 대한 바른 생각, 장인정신, 생명철학 등 ‘무형의 것’들이었다. 이를 하나씩 들여다보자.

첫 방문지는 일본 6차산업의 대표적인 성공모델 중 하나로 꼽히는 모쿠모쿠 농원(미에 현).

농촌체험형 관광농원인 이곳은 무엇보다도 많은 젊은이들이 활기차게 일하는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일본 또한 농촌 고령화로 신음하고 있지 않은가). 공식 브리핑을 맡은 임원은 “이곳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일하고 있지만 돈만 벌겠다는 생각은 없다. 생명산업인 농업이 갖고 있는 정신과 가치를 소비자들과 함께 나누면서 자기실현을 하고자 일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가격’이 아니라 ‘가치’를 판다고 했다.

일본 전통된장을 만들어 판매하는 핫초미소 공장(오카자키·岡崎)을 방문할 때에는 그들의 장인정신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677년 역사를 갖고 있는 이 된장공장은 콩 등 재료를 큰 삼나무 통에 넣고 그 위에 석공이 돌을 쌓아 만드는 전통 제조법을 지켜오고 있었다. 이 회사 사장은 “우리가 옛 방식을 고집하며 기울이는 모든 수고가 된장의 가치에 포함된다. 욕심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이를 고객으로부터 인정받는 힘이 지속가능한 경영의 원천”이라고 했다. 적자도 없고 강제 퇴직도 없다는 이 회사는 70대 노인 직원들이 가장 큰 자랑거리라고 한다.

이어 들른 곳은 시가(滋賀) 현의 한 협동조합. 2006년 법인으로 전환한 시가시 오미 협동조합은 마을 농가 28가구 중 21가구가 참여하고 있다. 이 조합은 과거 10년간에 걸쳐 등기부상 소유관계는 그대로 둔 채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400곳의 논을 50곳으로 정비했다. 협동조합의 진정한 협력과 연대의 힘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없을까? 조합 관계자는 “어려움도 있지만 지금까지 탈퇴한 조합원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오사카에 있는 스기고헤이 농원은 40년 전 대학을 졸업한 한 젊은이가 ‘어떤 농업을 할 것인가’ 하는 고민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의식 있는 선구자의 역할이 왜 중요한지를 잘 보여줬다. 농업이 3D 업종으로 외면받던 시절, 순환 유기농법을 통해 자연 그대로의 작물을 재배하고 이를 먹고 체험하고 즐길 수 있도록 농업에 교육과 문화까지 접목한 것이다. 그들 스스로 “6차산업을 처음 실현한 곳”이라고 자부할 만했다.

이곳에서는 닭 토끼 당나귀 등을 사육한다. 당나귀 분뇨를 퇴비화해 땅을 살리고 그 땅에 사계절 건강한 먹거리를 재배해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친환경 작물 재배 및 수확, 동물 사육 과정에서 다양한 체험교육 및 문화이벤트를 연계한다. 아이들에게는 산교육의 장이자 어른들에게는 즐거운 식문화의 장이 된다. 손님들이 먹고 난 음식물 찌꺼기까지 고스란히 동물 먹이로 재활용한다.

이번 견학을 통해 농업과 농업이 주는 가치에 대한 그들의 바른 생각과 굳은 의지, 꿈을 잃어버리지 않는 자세 등을 배웠다. 물론 한계도 보았다. 일본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농촌 고령화의 늪에 빠져있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출 및 보조금 지원에 대한 의존도 생각보다 컸다. 실제로 시가시 오미 협동조합의 경우 2013년 한 해 결산은 흑자이지만 보조금을 제외하면 적자를 면치 못한다고 고백했다. 대표적 성공모델로 자타가 인정하는 모쿠모쿠 농원조차도 건축물은 보조금을 받아 지었으며 지금까지도 대출금 상환의 부담을 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일본 연수과정을 통해 6차산업을 ‘씨앗’으로 한 새로운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함께한 연수생들 사이에서는 “일본(인)이니까 가능하다”는 자조적인 푸념도 나왔다. 그러나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개방의 파고 속에서 우리도 할 수 있고, 또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부가 귀농·귀촌과 6차산업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제도와 지원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결국 이의 주체는 사람이고 그가 농업(의 가치)에 대해 어떤 생각과 철학을 갖고 임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일본 연수에서 얻은 교훈이 값진 이유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일본#농업#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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