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제순위가 순식간에 바뀌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이 전년도의 거의 두 배(89%)로 늘며 오랫동안 아프리카 최고의 경제대국 자리를 지켜왔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제쳤다. 케냐 역시 지난해 GDP가 25%가량 늘어 북아프리카의 튀니지 등을 넘어서서 단숨에 중진국 대열에 끼었다.
한 해 만에 경제가 89%, 25% 성장했으니 숫자만 봐선 세계 경제사(史)의 대표적 경제성장 사례로 꼽히는 ‘한강의 기적’이 초라해질 지경이다. 마법같이 보이는 아프리카 경제성장의 비밀은 바로 GDP 통계의 개편이었다. 전자상거래, 이동통신업, 영화 등 각종 무형자산들을 GDP에 포함시키자 경제규모가 크게 확대된 것이다.
하지만 통계는 어디까지나 숫자일 뿐이다. 숫자로 표현된 GDP가 커졌다고 삶의 질이 곧바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나이지리아, 케냐 등 GDP가 늘어난 나라들은 통계 개편 전과 마찬가지로 빈곤층의 비율이 높고 전력공급 상황도 열악하다. 이렇다 보니 통계를 개편할 때마다 ‘착시 현상’을 우려하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한국의 통계청이 새롭게 내놓은 ‘고용보조지표’를 놓고도 적잖은 논란이 있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기준에 따라 만든 고용보조지표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구직자, 일할 뜻이 있는 경력단절 여성, 구직활동을 미룬 취업준비생 등 기존 고용통계에 실업자로 잡히지 않던 사람들을 포함한 지표다. 공식 실업률 통계에는 빠졌지만 일하고 싶어 하는 200만 명 이상이 고용보조지표에 새로 잡히면서 언론들은 ‘사실상 실업률’이 공식 실업률의 세 배 수준인 10.1%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통계청은 네 차례에 걸쳐 언론을 상대로 설명회를 열었다. 국민들의 오해를 부를 수 있으니 고용보조지표를 ‘사실상 실업률’이나 ‘실질 실업률’로 표현하지 말아달라는 게 설명회의 요지였다.
전문가들은 이런 통계청의 설명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애초에 통계청이 이 지표를 내놓은 취지는 공식실업률 통계와 체감실업률 간의 간극을 줄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고용보조지표’란 명칭만 고집하며 극구 새 지표와 실업률 간의 관계를 부인하는 것은 공식실업률 통계 뒤의 진실을 감추고 싶어 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청년들의 구직난을 해결하기 위해 직속 청년위원회까지 만들었다. 서자(庶子)의 존재를 부인하기 위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게 했던 홍길동의 아버지처럼 새 지표를 만들고도 가치를 애써 깎아내리려는 통계청의 태도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
경제통계는 경제현실의 민낯을 제대로 드러내 정책 수립에 기여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숫자와 용어에 집착하기보다 아픈 현실이라도 가감 없이 공개하고 이를 토대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고용정책을 마련하는 쪽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정부의 바람직한 태도다. ―세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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