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국 대학 ‘캠퍼스 아시아’ 수업… 학생들 함께 배우며 토론게임
戰後보상-영토 등 민감한 주제 국적 초월해 뜨거운 논쟁하면서
상대 보는 시야-이해의 폭 넓혀
韓中日 정상도 수업에 초청… 위치 바꿔 토론시켜보면 어떨까
그건 본 적이 없는 광경이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됐을 때 개인 보상도 포함해 최종 해결에 합의한 게 아닌가.”
“아니, 위안부 문제 등은 예상도 못했다. 국민 개인이 청구할 권리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일본의 전후 보상에 대해 내 눈앞에서 격렬한 논쟁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달 11일 부산 동서대에서 2개 학생 팀이 전개한 토론이다.
아니 그 정도라면 놀랄 일이 아니겠지만 6명씩인 두 팀은 모두 한중일 학생 2명씩으로 구성된 혼성 그룹이었다. 중국인도 일본인도 한국어로 벌이는 뜨거운 토론은 내용적으로도 들을 만했다.
무슨 행사인지 설명하자면 이것은 동서대와 중국 광둥외어외무(外語外貿)대, 일본 리쓰메이칸대 학생들의 ‘캠퍼스 아시아’ 수업의 일환이다.
학생들은 3학년이지만 1학년 때부터 서로의 언어와 문화 등을 배우고 최근 2년간은 몇 개월씩 세 대학에서 함께 공부해왔다. 지금은 동서대에서 두 바퀴째 마지막 수업을 체험하고 있다.
학생들은 한중일 10명씩 30명으로 논쟁 때는 5개 조로 나뉜다. 이날 주제는 전후 보상이었지만 이 밖에 다케시마·독도, 센카쿠 열도, 야스쿠니신사 참배, 식민지 근대화론 등 까다로운 문제로만 총 5회, 매주 2개 팀씩 토론해왔다.
그래서 “다케시마는 한국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인 학생도 있고 “센카쿠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중국 학생도 나오게 된다. 모든 것은 게임이라 생각하고 면밀한 준비를 거듭해 팀플레이를 전개하는 것이다.
매번 나머지 세 팀은 방청석에서 양쪽에 질문을 퍼붓고 마지막에 승부를 판정한다. 이날은 나까지 그 역할을 하게 돼 꽤 식은땀을 흘렸다.
학생들은 어떤 심정일까. 밤에 열린 간담회에서 불고기를 먹으며 감상을 들었다.
“자기 나라와 다른 주장을 하니까 처음에는 매우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조사하면서 여러 가지를 알게 돼 재미있어졌습니다.”
“상대 국가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잘 알게 돼 시야가 넓어졌습니다.”
“사실은 반대 견해를 갖고 있지만 어느새 논쟁에 이기려고 열심히 하게 돼 버렸습니다.”
이구동성으로 이런 말이 나왔다. 학생들은 모두 3개 언어가 유창했고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지도를 맡은 이원범 교수는 “국적을 초월한 동아시아의 학생이 생겨나는 게 기쁘다”고 말했다. 나도 그걸 실감할 수 있어서 감동적이었다.
“괘씸하다”고 화내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인에게는 한국의 주장을 주입하는 게 교육이 아닌가”라고. 하지만 걱정 안 해도 된다. 그들은 상대 주장의 강점과 약점을 잘 연구한 만큼 외교관이라도 되면 상대의 급소를 제대로 파고들 것임에 틀림없다. 그보다는 무엇보다 넓은 시야에서 자국을 생각하는 습관이 몸에 밴 게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익으로 이어질 것이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중국 베이징에서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려 이 자리에서 드디어 일중 정상회담이 실현됐다. 이는 많은 일본인을 안심시켰지만 한국인을 안심시킨 것은 처음에 아베 신조 총리를 무시하듯 미소조차 짓지 않은 시진핑 주석의 실례라고도 할 수 있는 표정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한국도 의식한 퍼포먼스였음에 틀림없다.
그 표정에 안도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아닐까. 베이징에 이어 미얀마에서도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과의 정상회의 때 아베 총리와 나란히 앉아 대화했는데 그 상냥한 표정이 대조적으로 보였다. 박 대통령은 계속 미뤄진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하는 기회도 얻었다.
하지만 과연 그 실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한일 정상회담은 언제가 될지. 아베 총리는 그런 건 모르겠다는 듯 귀국하자 중의원 해산을 표명하고 영문 모를 총선거에 돌입해 버렸다.
문득 생각해 본다. 차라리 한중일 정상을 캠퍼스 아시아에 초청해 함께 차분히 공부하도록 하면 어떨까. 얼굴을 펴고 위치를 바꿔 논쟁도 해보도록 한다. 누가 동아시아에서 가장 리더 자격이 있을까. 판정은 그 후에 할 거라고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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