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한국에 살기 시작했으니, 한국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서 궁중요리를 배운 적이 있다. 일본인은 나 혼자. ‘음식은 만국 공통이니까 괜찮겠지’라고 생각한 것이 실수였다.
우선 한국 역사와 궁중요리의 유래에 대한 강의가 1시간이었다. 강의가 끝나면 선생님이 직접 음식을 만들어 주신 후 이를 따라 그룹을 나눠 조리를 시작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수업이 한국어로 진행되어 나로서는 알아듣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강의를 한참 듣다 보면 무슨 소리인지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래도 선생님과 같은 반 학생들 덕분에 4개월 동안 즐겁게 배울 수 있었다. 실습 때 조리를 못해 “앗, 어떡해! 음식 버렸다”며 속상해했더니, 옆에 있던 한국인 동료들은 “그만하면 잘했어”라며 웃으며 격려해 주었다. 한국 요리를 즐겁게 배울 수 있었던 것도 정이 깊었던 이분들 덕분이었다.
일본 요리에 비하면 한국 음식은 준비할 게 많아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기본 육수를 만들려면 몇 시간 동안 쇠고기 국물을 우려내야만 한다. 가쓰오부시를 넣고 몇 분간 국물을 우려내는 일본 요리와는 근본부터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양념’이다.
일본 요리의 기본 조미료는 간장, 소금, 설탕, 미림, 술이다. 한국 음식은 이런 것들을 포함해 때론 배즙, 고춧가루, 파, 마늘, 참기름 등 여러 가지 조미료를 사용해야 깊은 맛이 있는 양념이 완성된다. 집마다 김치 맛이 다르듯, 양념도 만드는 사람의 손맛이나 가풍에 따라 달라진다. 만든 요리를 시식할 때 “우리 집에서는 이렇게 만든다”는 한마디, 한마디가 덧붙는 것도 요리교실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친구와 백화점 지하 식품매장에 갔을 때였다. 우선 불고기 소스까지 판다는 점에 놀랐다. 이를 집어 드는 사람도 꽤 많아 보였다. 일본에서도 각종 양념장과 샐러드드레싱 그리고 소바를 적셔 먹는 소스를 판다. 그러나 이를테면 ‘니쿠자가’(감자와 각종 야채를 소스에 졸여서 만든 일본 가정식의 기본 반찬)를 위한 양념장 같은 것은 없다.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 생각해 봤다. 양념이라는 것이 여러 가지를 뒤섞어 만드는 일종의 ‘화음(하모니)’인 만큼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려워서 그런 것 아닐까. 물론 외국인인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양념 만들기가 어렵다 보니 사다 먹는 게 편하다. 그래도 뭔가 ‘한국 어머니의 맛’을 잃어 가는 것 같아서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에도 ‘지쿠젠니(닭고기조림)’처럼 어머니의 손맛이 연상되는 요리는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걸린다. 서양 음식에 길들여진 젊은 사람들에게는 귀찮겠지만, 우리 집 맛은 내가 이어야지 하는 생각도 든다.
일본 요리는 흔히 소재의 맛을 이끌어내고 이를 살린 요리라고 한다. 한국에 이자카야 음식 체인점이 많지만 달거나 짜거나 강한 맛이 많다. 하지만 일반적인 일본 요리는 소재가 가장 중요하고 계절감과 향, 식감을 소중히 여긴다. 진짜 맛은 담백한 쪽이다.
그 때문인지 모르지만 일본의 채소는 수분이 많다. 그래서 일본의 배추나 무로 김치를 담그면 금방 싱거워져서 맛이 없다.
미소 수프(일본식 된장국)와 한국의 된장찌개도 전혀 다르다. 일본 된장은 향이 잘 날아가기 때문에 끓는 물에 넣는 즉시 불을 줄이거나 끈다. 한국의 된장찌개는 끓일수록 양념과 찌개의 맛이 잘 어우러지게 된다.
음식 차이는 문화 차이이기도 하다. 그래서 음식을 알면 그 나라를 더 이해할 수 있다. 나도 궁중요리를 통해 한국에 대해 조금은 이해가 깊어진 것 아닌가 싶다.
“식사는 하셨어요?”라고 한국인 누군가가 내게 물은 적이 있는데, 그게 따뜻한 한국식 인사말인 줄 몰랐던 나는 ‘같이 식사를 하자고 권하는 말인가’ 생각한 적이 있다. 어떻든 이런 인사가 오가는 한국에서는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는 일본도 같다.
음식을 통해 양국의 관심이 높아지고 이해가 깊어진다면 이보다 멋진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 일본 가정에서 한국 요리가 식탁에 오르고 있고 한국에서는 일본식 이자카야가 정착됐다. 음식을 먹으며 그 요리를 만든 나라에도 서로 관심을 갖게 된다면 요리도 더 맛있게 느껴지고 세상을 보는 시각도 더 넓어질 것 같다.
: : i : : 가와니시 히로미 씨는 한국에 서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일본 주부다. 한국에서 산 지도 3년째에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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