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김윤근 경남도의회 의장은 “앞으로 도정 질의 때 도지사 말고 담당 국장이 답변하도록 해 달라”고 홍준표 경남도지사에게 요청했다. 툭하면 “도지사 나오라”던 지방의회 관행과는 달라진 경남도의 풍속도다. 도의원들이 권위도 좀 세우고 싶은데 도정에 빠삭한 홍 지사는 되면 되고 안 되면 안 된다고 가차 없이 받아쳤다. 이런 모습이 TV로 중계되자 도의회에서 타협안을 내놓은 것이다. 지난해 진주의료원 폐업으로 공공의료 개혁을 주도했던 그가 이번엔 무상급식 문제로 좌파 진영과 또다시 전선을 형성했다. 새누리당 일색인 경남에서 편하게 지사 할 수 있을 텐데 계속 싸움닭으로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18일 경남 창원의 경남도지사 집무실에서 칼 같은 캐릭터의 홍 지사를 만났다. 》
무상급식보다 학교시설 개선이 시급
―경남도만 무상급식 지원을 안 하겠다니 좀 야박하지 않나. 학생들을 굶겨서야 되겠나.
“학교에 밥 먹으러 오나. 공부하러 학교 간다. 무상급식보다 더 급한 게 학교 기자재와 시설 보수, 교원 처우 개선이다. 그리스나 아르헨티나처럼 나라가 파산으로 치달아도 진보좌파에게 끌려다녀야 하나. 경남도에서 4년 동안 도교육청에 무상급식 하라고 준 돈이 3040억 원이나 되는데 감사 한번 해보자니까 거부하겠단다. 감사 없이는 예산 줄 수 없다고 했다. 이젠 감사를 받더라도 예산 안 줄 것이다.”
―진주의료원 폐업, 무상급식 예산 거부도 대통령 되려는 포석이라는 수군거림이 있다.
“정상적인 도정을 하는 것인데 3년 반 남은 대통령 선거와 무슨 상관이 있나. 무상급식 거부 선언에 전국적으로 호응이 있다. 큰 배가 지나가면 낮은 물결은 일게 마련이다. 좌파 어젠다를 건드렸으니 좌파 언론과 좌파 시민단체가 가만히 있겠나. 벌 떼처럼 달려들지만 큰 배 가는 데 작은 물결은 장애가 되지 않는다.”
―무상복지는 박근혜 대통령도 책임이 있지 않나.
“무상급식은 재량 사항이고 무상보육은 법적 의무사항이라는 논법은 옳지 않다. 같은 선상에서 평가해야 할 잘못된 정책이다. 지금은 보편적 복지가 아니라 서민복지를 해야 한다. 부자들에게 애 낳으라고 20만 원 준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가난한 집 20만 원은 부잣집 2000만 원보다 더 큰돈이다. 그 돈 있으면 서민에게 더 줘야 한다.”
―진주의료원도, 무상급식도 일을 하면서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다는 비판이 있다.
“관련 실국에서 검토하고 외부 의견 수렴하고 집행하면 될 일이지 전부 투표해야 하나. 좌파 정부에서 하듯 위원회 회부해서 결정하면 도지사나 대통령은 집행만 하는 게 리더십인가. 모든 것을 여론조사로 한다면 지도자가 무슨 필요가 있나. 나도 340만 경남도민에게 매달 100만 원씩 생활비 주고 싶다. 그런데 돈이 없다.”
―지난해 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 아들 문제로 시끄럽더니 박희태 전 국회의장과 신승남 전 검찰총장도 성추행 사건에 휘말렸다. 검찰 출신들이 말썽이다(홍 지사는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 시절 슬롯머신업계의 대부 정덕진을 구속한 것으로 유명하다).
“검찰만이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가 다 그렇다. 전체 지도층의 문제다. 그 자리에 있을 때나 퇴임 후에도 상응하는 대접을 받으려면 그렇게 처신하면 안 된다. 채동욱은 사법연수원 동기라 좋게 봤는데…. 축첩 사실을 지금도 부인한다면 임모 여인은 처녀잉태란 말인가. 작년에 검사들이 웅성거릴 때 ‘공무원의 축첩은 범죄’라고 내가 꾸짖으니 잠잠해졌다. 1993년 슬롯머신 수사 때 고검장 3명을 수사했는데, 자신들은 치외법권(治外法權) 지대에 있는 줄로 착각하더라.”
朴대통령, 인사-정책대응 능력 부재
―박근혜 대통령이 잘하고 있나.
“첫째 인사, 둘째 정책 대응능력 부재가 문제다. 인사는 빼는 칼마다 문제였다. 집권 1년 10개월 동안 야권에 끌려다녔다. 대통령이 정국을 주도하지 못했다. 최근 몇몇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 외교 하고 나서야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참모들이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
―야당은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물러나라고 한다.
“전적으로 대통령 뜻에 달렸다. 외부에서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비서실장은 독립 권력이 아니다. 대통령에 종속된 사람에 불과하다.”
―대통령이 사람을 어떻게 써야 하나.
“임기 중 첫해부터 4년까지는 모든 빗장을 풀고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 ‘충성도 내각’은 임기 마지막 1년 때 퇴임을 대비해 꾸리면 된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역대 대통령 모두 충성도 내각으로 짰다가 임기 말 친인척 측근 비리로 지지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졌다.”
―박근혜 정부에선 총리고 장관이고 총대 메고 일하는 사람이 없다는데….
“이명박(MB) 대통령 때 행정부처 국장 인사도 청와대에서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러다 보니 부처 실·국장들이 청와대 눈치만 봤다. 장관 리더십이 생길 수가 없다. 청와대에서 장관들에게 부처 인사권 다 주면 장관들이 책임지고 일할 것이다.”
대통령 되면? 한국 클린사회 만들것
―대통령이 되면 뭘 하고 싶나(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이냐 같은 의례적 질문 대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홍 지사 역시 말 돌리지 않고 답변했다).
“취임 후 인사 파동에 휘말려 1년 동안 일을 못하는 정권이 많았다. 대통령 당선 후 2개월가량의 준비 기간에 총리 장차관 인사를 다 할 것이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오전에 취임식하고 총리와 장관들은 같은 날 오후에 취임식을 갖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세탁해야 한다. ‘클린 소사이어티’를 만들 것이다.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다 부패했다. 보수는 뻔뻔스럽고 진보는 위선으로 가득 차 있다.”
―한나라당 원내대표 시절 “대한민국을 세탁기에 넣어 둘둘 돌리고 싶다”고 해 MB가 법무부 장관 안 시켰다던데….
“내가 대통령 형님 이상득부터 잡아넣을까 봐 겁냈던 것 같다. 결국 감옥에 갔지 않나. MB는 나를 법무부 장관 시킬 생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참모들이 ‘절대 안 된다’고 말렸다더라. 법무부 장관이 정권의 방패막이가 돼야 하는데 홍준표는 아군도 가차 없이 베어버릴 것이라 걱정했다고 한다. 2009년 원내대표 시절 법무부 장관을 하고 싶었지만 이젠 내 호봉이 넘었다. 내 손으로 한국을 깨끗하게 만들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왜 통제할 수 없는 인물이 됐나.
“공직생활 30여 년 동안 뇌물 한 번 먹지 않았고, 여자 건드린 적도 없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리더층은 나를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기득권층에선 내가 자신들의 손아귀에 안 들어온다는 것이 불만이다. 슬롯머신 비리 수사할 때 정덕진과 그 배후세력(박철언 당시 의원, 이건개 당시 대전고검장)을 치려고 하니까 ‘돈키호테 검사’라고 했다.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돌진했다가 풍차를 깨뜨렸다는 것이다. 꼭 나쁜 말로 쓴다. ‘통제되지 않는 홍준표’라고. 자기들 손아귀에서 놀아주면,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가면 당직도 좋은 것 얻고 장관도 총리도 시켰겠지.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野부자증세 거짓논쟁으로 국민현혹
―어떤 사람들이 돈키호테라고 하던가.
“내 머리를 못 따라오고, 생각도 못 따라오고, 시대정신을 못 따라오는 사람들이다.”
―친박도, 친이도 아닌데 당내 계파 없이 대통령 될 수 있겠나.
“친이였다면 법무부 장관, 총리까지 다 했겠지…. 그러나 계파 없이도 당 대표 선거에서 이겼다. 이젠 시대가 바뀌었다. 패거리 지어, 무리 지어 경선하는 시대는 끝났다. 지금 새누리당에 친이가 누가 있나. 이재오밖에 없지 않나.”
―빨간 점퍼, 빨간 넥타이에 빨간 내의까지 입는 것은 권력을 향한 의지의 표현인가.
“러시아에선 정의와 열정, 정의와 순수를 빨간색으로 표현한다. 미신을 믿어서, 점을 쳐서 빨간색을 선호할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안철수 문재인 반기문을 어떻게 평가하나.
“안철수는 구름 위의 남자였다가 땅에 내려오니까 폭락한 것이다. 새정치를 정치 좌표로 내세우면서 가장 구(舊)정치답게 해버렸다. 비서실장 출신 문재인은 비서실장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차기 대선에서 야권은 박원순-안희정 싸움이 될 것이다. 반기문은 국제 감각이 탁월하고 기회가 온다면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권력 의지가 있어야 한다.”
―지금 새누리당이 하는 것을 보면 정권 재창출이 쉽지 않을 것 같다.
“당내 후보들이 치열하게 경쟁해야 재집권 길이 열린다. 그러나 비관할 필요는 없다. 김대중은 실패했어도 노무현은 대통령이 됐다. 시대정신을 잘 읽는 사람이 나오면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될 것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체제는 순항할 것인가.
“공무원연금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승부가 걸려 있다. 당초 얘기한 대로 연말까지 못하면 당이 시끄러워질 것이다. 이게 삐걱거리면 맨 먼저 이완구 원내대표가 직을 던질 것이고, 그 다음 서청원 이정현 김을동 의원 등 친박들이 줄줄이 (최고위원) 사퇴 선언할 것이다.”
―야당에서 부자 증세하라고 난리다.
“야당의 상투적인 거짓 논쟁에 국민들이 현혹되면 안 된다. 부자들 소득세는 이미 인상했다. 법인세 인상 문제는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되느냐를 따져야 한다. 법인세를 올리면 경기 회복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결국 서민들이 더 힘들어진다.”
黨혁신안은 또 다른 포퓰리즘
―새누리당 혁신안을 놓고 김문수 보수혁신특별위원장을 세게 공격했는데 벌써부터 견제하나.
“헌법 테두리 안에 맞게 해 달라는 것이다. 혁신의 구실 아래 또 다른 포퓰리즘을 낳아선 안 된다. 국민들은 헌법을 잘 모르니까, 속이야 시원하겠지만 법률이 통과돼도 위헌이다. 당 지도부가 싸우는 마당에 의원들이 국회에 출석 안 했다고 세비 깎고, 기본권에 해당하는 출판기념회를 국회의원만 못하게 하고, 헌법이 보장한 의원 불체포특권을 법률로 제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김문수가 상대(商大) 출신이라 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세월호는 무엇이 문제였나.
“선장이 탈출하라고 지시하지 않아도 해경이라도 배에 뛰어들어 핸드마이크라도 잡고 대피 지시를 했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위난에 대처하는 공직자의 자세가 잘못돼 눈덩이처럼 화가 커졌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한 가지만 조언한다면….
“열린 마음으로 대통령을 하면 참 좋겠다. 계파에 얽매이지 말고 좌우에 얽매이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인사를 하고 국정을 보면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대통령 자리는 당선된 순간부터 국민을, 국가를 바라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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