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놀라운 탄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탄소 형제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하늘로부터 무시무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의 공기 생활은 끝났다. 땅으로 들어가 살아라.” 아우는 도망치고 형은 땅속으로 들어갔다. 천둥 벼락이 치고 폭풍우가 몰려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지상으로 도망친 아우가 어느 날 눈을 떴다. 그는 시커먼 숯이 되어 있었다. 땅속의 엄청난 압력과 열기를 견뎌낸 형은 찬란한 다이아몬드가 되어 있었다. 정채봉의 에세이 ‘숯과 다이아몬드’에 나온 얘기다.

▷숯과 다이아몬드는 전혀 다른 물질 같지만 순수한 탄소로 구성돼 있다는 점에선 같다. 원자들이 결합하는 형태가 다를 뿐이다. 지구상에서 생명의 근원은 탄소다. 유전 정보가 담긴 DNA는 탄소 화합물이다. 광합성, 호흡과 같은 생명 현상은 탄소로 만들어진 유기물에 의해 이뤄진다. 태양 에너지도 탄소를 촉매로 하는 핵융합 반응으로 형성된다. 18세기 이후 산업문명도 석탄과 석유에 포함된 탄소가 가능하게 했다.

▷탄소는 기후 변화의 주범이라는 이유로 현대 사회에서 완전히 매도당하는 원소가 됐다. 이명박 정부는 ‘저탄소 녹색 성장’이라는 슬로건 아래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것을 경제정책 방향으로 설정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탄소 처지에서 보자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탄소를 이용해 잘 먹고 잘산 것은 인간이었는데 이제 와서 탄소를 인간 생존을 위협하는 악(惡)으로 취급한단 말인가. 서강대 화학과 이덕환 교수는 탄소의 가치를 재발견하자며 탄소문화원을 만들었다.

▷효성그룹과 전라북도는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중심이 되어 구축하는 ‘탄소 클러스터’에 2020년까지 1조2450억 원을 투자해 탄소를 미래 산업으로 키우기로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출범식에 참석해 탄소 섬유로 만든 기타를 연주했다. 탄소 섬유는 무게는 철의 4분의 1이지만 강도는 10배, 탄성은 7배가 강해 철을 대신할 미래의 핵심 소재로 꼽힌다. 이명박 정부가 버린 자식 취급하던 탄소를 박근혜 정부가 나서 양육하는 듯도 하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탄소#숯#다이아몬드#효성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