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영국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는 ‘디아스포라의 마술’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디아스포라’는 그리스어로 ‘사방으로 흩어지다’는 뜻. 모국의 바깥에서 흩어져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기아와 박해, 학살 등을 피해 고국을 떠난 1세대 이민자는 물론이고 그들의 혈통을 이어받은 후손 모두가 ‘디아스포라’이다.
○ 아일랜드-아르메니아 살린 디아스포라
경제 침체에 고통을 겪는 정부들에 “갈수록 커지는 디아스포라의 경제적 중요성과 디아스포라들이 국가 경제의 성장에 공헌할 수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이 잡지는 조언했다. 디아스포라의 힘이 모국의 경제뿐 아니라 그들을 받아들인 미국이나 영국 등 경제대국에도 경제 회복을 위한 마술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기사는 폐쇄적 이민정책을 펴는 나라들에 충고를 하지만 디아스포라의 경제적 힘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룬다. 유대인 등 디아스포라 연결망은 언제나 잠재적 경제력이었으며, 그 힘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것.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올 10월 아일랜드에서 열린 포럼에서 “세계의 국경은 벽이 아니라 그물처럼 보인다. 지구 반대쪽 사람들을 연결하는 능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디아스포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 경제는 수십 년째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당장의 회복은커녕 미래에 대한 전망도 비관적이다. 오죽하면 경제학자 출신의 여당 의원이 국회 연설에서 “한국 경제가 여기까지인가”라며 한탄했겠는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한국 경제의 돌파구를 디아스포라의 힘에서 찾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디아스포라의 마술이 한국에서도 펼쳐지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급격하게 노령화가 진행되는 사회에 이민은 젊은 피를 수혈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돌게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매우 까다로운 이민정책을 펴는 나라이다. 단일민족 정서가 강한 곳이라 이민 문턱을 낮추면서 외국인 두뇌와 경제력을 흡수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보다 세계에 퍼져 있는 ‘한국인 디아스포라’들이 한국 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더 수월할 것이다.
아일랜드는 1990년대 초반까지 가난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8000만 ‘아일랜드인 디아스포라’의 힘으로 경제 기적을 이룬 나라가 됐다. 그들은 각종 투자와 송금, 여행 등으로 모국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갖가지 행사를 벌여 아일랜드의 이미지를 개선했다. 책 속에만 있던 ‘아일랜드인 디아스포라’라는 말을 현실의 힘으로 만든 사람은 메리 로빈슨 대통령이었다. 그는 1990년 취임하자마자 디아스포라를 포용한다는 의미로 대통령 관저의 창문마다 촛불을 밝혔다. 아일랜드 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로 파탄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디아스포라의 도움으로 다시 회복되고 있다. 아르메니아인 디아스포라 역시 모국 경제를 일으켜 세웠다. 오토만 제국(오스만 제국) 멸망 후 서부 아르메니아를 장악한 터키인들은 1915년부터 2년여 동안 15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을 죽였다. 대학살을 피해 아르메니아인들은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다. 1990년대 말, 1000만 디아스포라들의 개인 송금액만 아르메니아 국내총생산(GDP)의 30%에 달했다.
‘날리우드’는 나이지리아의 영화 산업을 이르는 말이다. 나이지리아는 세계 두 번째 영화대국. 2013년에만 10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나이지리아가 겨우 30년 만에 세계 영화계에 ‘날리우드 현상’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나이지리아인 디아스포라 덕분이었다. 그들은 날리우드 영화의 열렬한 관객이었다. 이제 날리우드는 나이지리아인 디아스포라를 넘어서 아프리카인 디아스포라까지 사로잡고 있다. 이들 디아스포라는 날리우드가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도록 문화적 정서와 기술 지식의 원천이 되고 있다. 유대인들이 전 세계의 금융 산업, 군수 산업, 영화 등 연예 산업, 보석 산업, 유통업 등에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합동작전 때문이라고 한다. 세계를 단일시장으로 이해하는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놀랄 만한 상호 신뢰와 단결력으로 소통하고 교류하며 세계 정보를 장악하고 있다.
○ 열린 마음으로 기술 지식 정보 활용해야
지금은 글로벌 시대이다. 혁신적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디아스포라의 경제적 유대를 더욱 공고히 만들고 있다. 디아스포라는 돈은 물론이고 기술과 아이디어까지 모국에 전파한다. 전 세계에 한국인 디아스포라는 700만 명가량이라고 한다. 한국 경제가 이민 1, 2세대의 송금을 기대하는 수준은 아닐 것이다. 3세대든 4세대든, 입양인이든 혼혈이든, 한국 국적을 가졌든 그렇지 않든 모두를 한국인 디아스포라로 포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들의 지식과 기술, 정보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을 한국 문화와 상품의 최우선 구매자이며 최고의 홍보대사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들과의 연결은 한국 경제를 위한 중요 자산이다. 해외 혼혈인들을 무시하고, 운동선수나 연예인들이 한국 국적을 버렸다고 비난하거나 냉대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외국인들에게 지나치게 폐쇄적이다. 그렇다고 한국인 디아스포라에게도 폐쇄적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세계의 디아스포라들을 보라. 결국 그들을 한국인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열린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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