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재명]청와대가 해야 할 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일 03시 00분


이재명 정치부 차장
이재명 정치부 차장
올해 1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만든 ‘정윤회 동향’ 문건을 두고 찌라시(풍문)냐, 감찰보고서냐 논란이 뜨겁다. 일단 선뜻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 적지 않다.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이 동시에 떠도 소문이 쫙 퍼질 텐데 ‘십상시(十常侍·중국 후한 말 전횡을 일삼은 환관들을 일컫는 말)’가 동반 출격했다는 부분부터 그렇다. ‘비선 실세’ 정 씨가 ‘장군의 아들’ 김두한처럼 종로 패거리를 불러 모은 격이다.

그럼에도 이 문건 작성 이후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교체설이 시도 때도 없이 찌라시와 언론에 등장했으니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남는다(이 문건에는 정 씨가 십상시에게 김 실장 교체설을 퍼뜨리라고 지시했다는 대목이 있다).

졸지에 환관이 돼버린 청와대 인사들은 이를 보도한 세계일보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정 씨와 십상시의 회동 여부는 조만간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선 논란이 잦아들 것 같진 않다. 정 씨를 둘러싼 소문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다.

한때 정 씨가 사법 처리된 대기업 오너들의 구명 로비를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CJ그룹 자회사가 협찬한 한 음악회에 정 씨가 가명까지 써가며 등장하자 이 소문은 더욱 그럴듯해졌다. 주민 반대로 홍역을 치른 서울 용산 장외마권거래소(화상경마장) 개장에 정 씨가 개입했다는 설도 있다. 한동안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전 원내대표는 이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림자 실세’의 꼬리를 잡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유출 문건 내용에 얽매이지 말고 정 씨와 관련한 의혹들을 말끔히 정리해야 한다. 수사를 통해서라도 정 씨 관련 의혹을 규명하는 것, 청와대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다.

이번 문건 유출 파문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씨와 정 씨 사이의 알력 다툼은 기정사실화됐다. 정 씨 측이 박 씨를 미행했고, 박 씨가 이를 내사한 보고서를 손에 쥐고 있다는 소문의 실체는 무엇인가. 박 씨 부부가 올해 여행을 다녀오다가 공항에서 가방 수색을 당했다고 한다. 누군가 일부러 망신을 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비선 라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권에 부담이다. 그런데 그 라인끼리 다투다니 말세다. 두 사람 사이의 알력 다툼도 반드시 조사해야 한다. 청와대가 해야 할 두 번째 일이다.

문제는 결국 인사다. 특정인을 왜 발탁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비선 논란을 잠재울 순 없다. 당장 반미주의적 시각이 뚜렷한 김상률 대통령교육문화수석은 왜 기용했는가. 이념의 스펙트럼을 넓히려는 탕평인사였다면 차라리 이해할 수 있다. 인사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 청와대가 해야 할 세 번째 일이다.

박 대통령은 집권 1년 차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에 발목이 잡혀 아까운 시간을 허비했다. 집권 2년 차 뭔가 되나 싶더니 세월호 참사로 허무하게 무너졌다. 이제 다시 ‘정윤회의 늪’에 빠진다면 이 정권의 골든타임은 영영 날아갈 것이다.

이재명 정치부 차장 egija@donga.com
#청와대#정윤회#유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