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만든 ‘정윤회 동향’ 문건을 두고 찌라시(풍문)냐, 감찰보고서냐 논란이 뜨겁다. 일단 선뜻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 적지 않다.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이 동시에 떠도 소문이 쫙 퍼질 텐데 ‘십상시(十常侍·중국 후한 말 전횡을 일삼은 환관들을 일컫는 말)’가 동반 출격했다는 부분부터 그렇다. ‘비선 실세’ 정 씨가 ‘장군의 아들’ 김두한처럼 종로 패거리를 불러 모은 격이다.
그럼에도 이 문건 작성 이후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교체설이 시도 때도 없이 찌라시와 언론에 등장했으니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남는다(이 문건에는 정 씨가 십상시에게 김 실장 교체설을 퍼뜨리라고 지시했다는 대목이 있다).
졸지에 환관이 돼버린 청와대 인사들은 이를 보도한 세계일보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정 씨와 십상시의 회동 여부는 조만간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선 논란이 잦아들 것 같진 않다. 정 씨를 둘러싼 소문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다.
한때 정 씨가 사법 처리된 대기업 오너들의 구명 로비를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CJ그룹 자회사가 협찬한 한 음악회에 정 씨가 가명까지 써가며 등장하자 이 소문은 더욱 그럴듯해졌다. 주민 반대로 홍역을 치른 서울 용산 장외마권거래소(화상경마장) 개장에 정 씨가 개입했다는 설도 있다. 한동안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전 원내대표는 이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림자 실세’의 꼬리를 잡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유출 문건 내용에 얽매이지 말고 정 씨와 관련한 의혹들을 말끔히 정리해야 한다. 수사를 통해서라도 정 씨 관련 의혹을 규명하는 것, 청와대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다.
이번 문건 유출 파문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씨와 정 씨 사이의 알력 다툼은 기정사실화됐다. 정 씨 측이 박 씨를 미행했고, 박 씨가 이를 내사한 보고서를 손에 쥐고 있다는 소문의 실체는 무엇인가. 박 씨 부부가 올해 여행을 다녀오다가 공항에서 가방 수색을 당했다고 한다. 누군가 일부러 망신을 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비선 라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권에 부담이다. 그런데 그 라인끼리 다투다니 말세다. 두 사람 사이의 알력 다툼도 반드시 조사해야 한다. 청와대가 해야 할 두 번째 일이다.
문제는 결국 인사다. 특정인을 왜 발탁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비선 논란을 잠재울 순 없다. 당장 반미주의적 시각이 뚜렷한 김상률 대통령교육문화수석은 왜 기용했는가. 이념의 스펙트럼을 넓히려는 탕평인사였다면 차라리 이해할 수 있다. 인사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 청와대가 해야 할 세 번째 일이다.
박 대통령은 집권 1년 차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에 발목이 잡혀 아까운 시간을 허비했다. 집권 2년 차 뭔가 되나 싶더니 세월호 참사로 허무하게 무너졌다. 이제 다시 ‘정윤회의 늪’에 빠진다면 이 정권의 골든타임은 영영 날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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