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도 기사만 쓰는 것이 아니라 정보 보고를 한다. 보고하는 정보는 기사화하기에는 설익은 단편적인 팩트일 수도 있고,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었을 뿐이어서 확인이 필요한 얘기일 수도 있다. 전해 들었으면 누구로부터 들었는지 함께 보고해야 신뢰할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세계일보가 청와대의 정윤회 씨 동향 보고 문건을 공개했다. 문건 중 정 씨가 2013년 송년 ‘십상시’ 모임에서 지시한 내용을 다뤘다는 두 문장은 각각 ‘한다 함’과 ‘하였다 함’이란 말로 끝난다. 보고자가 직접 확인한 게 아니라 전해 들었다는 얘기다.
보고자가 누구로부터 들었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보고서에는 ‘제시하고 있음’처럼 직접 확인한 듯 끝맺은 내용도 없지 않다. 청와대는 그것까지 포함해서 “풍문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했다. 이 해명을 믿든 안 믿든 보고자가 직접 확인한 사항과 전문(傳聞)을 의식적으로 구별해 쓴 것은 분명하다. 다만 전문에 출처가 없어 신빙성을 떨어뜨리고, 그것이 다시 직접 확인한 것처럼 쓴 내용의 신빙성까지 떨어뜨린다.
보고서에서 정작 흥미로운 것은 그 속에 나타난 ‘찌라시’에 대한 인식이다. 정 씨의 지시 사항을 담은 두 문장이 모두 “정보지(속칭 찌라시) 관계자들을 만나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도록 ‘정보 유포’를 지시…” “정보지 및 일부 언론에서 ‘바람 잡기’를 할 수 있도록 유포를 지시…” 운운하고 있다.
내게 이것은 찌라시에 관한 액자(額子) 구조의 보고서로 읽힌다. 정 씨 관련 내용은 정 씨 모임의 성원을 ‘십상시’의 10명에 맞춰 현실을 역사적 사실에 끼워 넣은 듯해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진다. 찌라시를 모아놓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찌라시적이라고 볼 만한 구석은 많다. 그 내용이란 것도 찌라시를 가지고 뭔가 해보겠다는 것으로, 이 경우는 찌라시로 여론을 조작해 VIP를 움직이겠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찌라시가 지배하는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진실은 찌라시에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결국 찌라시에 의해 움직입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만이 아니라 이제 엄밀해야 할 청와대의 보고서에조차 찌라시의 문체가 섞여들었다. 출처 표기 없이 ‘한다 함’이라고 쓴 ‘믿거나 말거나’ 문체 말이다. 언론도 찌라시에 의해 움직인다. 일본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 전 지국장은 찌라시를 토대로 선데이서울적인 상상력을 발휘해 기사를 썼다. 그보다 앞서 찌라시에서 본 정 씨 소문을 무슨 대단한 것을 들은 양 쓴 한국 기자도 있었다.
찌라시는 매력적이다. 찌라시는 외딴 섬처럼 떨어진 사실의 조각들을 단번에 연결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물속의 숨겨진 연결고리를 찾아 들어가면 거기에는 어김없이 물 밖에서 상상한 것과 다른 현실이 있다. 찌라시에는 권력의 눈치도 보지 않는 저항 언론의 속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믿거나 말거나’ 식으로 소식을 전하는 것이 언론의 자유는 아니다.
찌라시는 다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찌라시에는 내가 몰랐던 내 회사 얘기도 종종 있었고 나중에 보면 그게 사실인 것도 있어서 놀란 적도 있다. 찌라시에는 진실과 거짓이 섞여 있다. 거짓은 진실이란 양념이 적절히 뿌려져 있을 때 더 효과적인 거짓으로 작동한다.
정보를 다루는 데는 맥시멀리즘(maximalism)적인 방식과 미니멀리즘(minimalism)적인 방식이 있다. 전자는 가능한 한 많이 믿고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는 것만 빼는 것이고, 후자는 가능한 한 적게 믿고 사실인 것으로 확인되는 것만 더하는 것이다. 전자는 신중하지 못해 보이고 후자는 한가해 보인다. 하지만 찌라시가 세상을 흔들수록 미니멀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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