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자의 의식 속에 홀연 떠오르는 나뭇가지 하나. 어쩌면 화자가 의도적으로 불러냈을까. 나뭇가지에 앵무새가 하나둘 날아와 앉으며 이루는 영상을 점진적으로 세밀하게 보여주는 서경 속에 화자의 마음 상태가 담겨 있다. 나무는 새들의 놀이터이며 양식을 구하는 곳이며 보금자리이다. 나뭇가지를 움키고 앉은 앵무새처럼 화자는 ‘사라지지 않기 위해 나는 이곳에/가지 위에 가지런히 두 발을 얹고’ 있단다. ‘가지 위에 빨강 하나/가지 위에 빨강 둘’, 시 속의 앵무새는 빨간색일 테다.(‘추위도 더위도 얼음도 눈물도’, 생이 이토록 시릴 때 다른 어떤 색을 바랄까) 즉 ‘빨강’은 앵무새의 환유다. 환유는 상투어의 느낌이 들어서 시인들이 잘 쓰지 않는다만, 이제니는 쓰고 싶은 대로 쓰는 시인이다. 앵무새의 탈을 쓰고 화자는 ‘나는 지금 아무 뜻 없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지 않는가. 뜻 없이 노래 부른다면서 ‘앵무는 날아온다 날아와서 앉는다/가지 위에 가지 위에 가지런히 가지 위에’, 이런 리듬은 다 뭐란 말인가? 시인은 제 지저귐에 취해 지저귀는 새처럼 저도 발성의 즐거움에 취할 기회를 놓치지 않으면서, 독자에게 읊조림의 쾌감을 주는 기법을 노련하게 구사한다.
나무는 삶의 터전이며 앵무새는 화자가 속한 종족일 테다. 시에서는 계절이 드러나지 않지만, 삭풍 몰아치는 이 계절에 읽노라니 삭풍에 떠는 노숙인을 연상하게도 하는 ‘앵무’…. 한 노숙인의 눈에 비친 노숙인 삶의 풍경이라 치고 시를 읽으니 절묘하게 그림이 생생해진다. 아, 그런 건가!? 해석을 달리 하니 서럽고 아름다운 시의 진경이 새로 펼쳐지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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