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손택균]칼레의 시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3일 03시 00분


손택균 문화부 기자
손택균 문화부 기자
체념. 고뇌. 분노. 항변. 좌절. 수치.

샅샅이 다시 뜯어봐도, 빈궁한 내 정서에 전해지는 단어는 그렇다. 오귀스트 로댕이 조각한 ‘칼레의 시민’. 1347년 영국군의 침공에 1년 가까이 저항하다 항복한 프랑스 해안도시 칼레에서 벌어진 일이 이 청동상의 모티브다. 영국 왕은 “6명의 희생양이 자진해서 목숨을 바친다면 다른 시민들에게 죄를 묻지 않겠다”고 했다. 로댕은 이때 스스로 나섰다고 전해지는 고급관료와 토호 6명의 모습을 나름의 상상으로 재현했다.

사회 고위층 신분에 걸맞은 도덕적 의무의 실천을 표상하는 작품으로 알려졌지만 실물의 이미지는 고결하지 않다. 잔뜩 몸을 웅크리거나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도시의 역사를 빛나게 한 영웅의 흔한 입상과는 다르다. 시민들의 비난에 밀려 원래 계획한 위치인 시 한복판에 세워지지 못했다고 한다.

관습적인 항복 이벤트를 후대 역사가가 감상적으로 윤색한 허구일 뿐이라는 해석도 있다. 전력 차가 확실하더라도 바다 건너온 원정군이 한 도시 사람들을 몰살시킬 수 있었을지 의문이라는 점에서 설득력 있는 지적이다. 독단적이고 괴팍하기로 이름 높았던 로댕이 애국심 고취의 도구로 쓰일 것이 뻔한 영웅주의 입상을 순순히 빚어냈을 리도 없다.

로댕을 붙잡아 앉혀놓고 캐물을 수 없으므로 이 청동상에 얽힌 이야기 중 지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딱 하나다. 칼레의 모든 구성원이 힘을 모아 외세의 공격에 오랫동안 강력히 저항했다는 것.

서울에 건너와 있는 칼레의 시민 복제품을 2일 점심 나절 다시 보러 갔다. 섭씨 영하 7도의 바람을 유리벽 밖으로 완강히 밀어낸, 중구 삼성생명 사옥 플라토미술관의 쾌적한 로비 한구석이다. 무료상설전시 공간이지만 입구를 들어서자 반가운 표정과 경계의 몸짓을 겸비한 직원이 “어떻게 오셨습니까” 엄중히 질문하며 맞이한다. 당연한 듯 인적 드물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고위층 신분에 걸맞은 도덕적 의무)는 계급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고안해낸 안전장치다. 칼레의 시민 영웅담은 그 장치의 기능 설명서다. 660여 년 전 칼레의 상황이 역사 기록처럼 감동적이지만은 않았으리라는 것을, 굳이 로댕의 폭로를 통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지금 이 땅에는 그렇게 묵인된 위선극조차 아쉽다. 가능한 한 군복무를 피하는 것이 이득으로 여겨지는 사회, 굳게 단합한 지식권력이 하층부를 당연한 듯 희롱하고 핍박하는 사회, 폭력과 사고로 억울한 피해를 입어도 최소한의 보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회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을 때, 평범한 다수에게 무슨 염치로 ‘단결과 저항’을 요구할 수 있을까.

서울에 온 칼레의 시민은 기업체의 사적 공간과 유리벽 밖 공적 공간 사이 점이지대에 경비병처럼 서 있다.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경계는 갈수록 두툼해지고 있다. 유사시에 힘을 모아 저항해 지켜낼 무언가가 아직 존재한다면, 그건 아마 공적 공간 쪽에 남아있을 거다.

손택균 문화부 기자 sohn@donga.com
#칼레의 시민#계급#군복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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