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이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올해 국내 개봉한 국내외 영화들을 떠올리니 이런 ‘최고’와 ‘최악’이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①최고의 대사=많은 사람들이 영화 ‘명량’의 명대사 “신에게는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혹은 “충(忠)은 의리다. 의리는 왕이 아닌 백성에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충은 백성을 향하는 것이다”를 꼽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못잖은 멋진 대사가 시한부 인생을 사는 청춘남녀의 애틋한 사랑을 담은 영화 ‘안녕, 헤이즐’에 나온다. 암 환자인 청년은 습관처럼 담배를 입에 물고 다닐 뿐 불을 붙여 피우진 않는다. “왜 담배를 물고만 다니느냐”는 질문에 청년은 이런 대사로 삶을 향한 강한 의지를 나타낸다. “이것은 사람을 죽이는 물건을 입에 물지만, (담배에게) 날 죽일 힘은 주지 않겠다는 상징적인 행동이야.”
아, 입에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한 담배에게 정작 불은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담배로 하여금 ‘아, 이 사람을 죽일 수가 없네’ 하는 안달과 좌절감을 선물하겠다니! 조만간 담뱃값도 엄청 오른다는데, 금연인 듯 금연 아닌 금연 같은 이런 행동이야말로 얼마나 지혜롭고 경제적인가.
이 밖에도 △영화 ‘군도’의 “뭉치면 백성이고 흩어지면 도둑이다” △영화 ‘씬 시티: 다크 히어로의 부활’의 “날 사랑할 수 없다면 날 증오해줘. 날 용서할 수 없다면 날 벌 줘” △영화 ‘트랜센던스’의 “난 저들과 싸우지 않을 거야. 난 저들을 초월할 거야” △영화 ‘헝거게임: 모킹제이’의 “난 고통스러울 때만 너의 키스를 받을 수 있군” △인공지능컴퓨터와 인간의 사랑을 그린 사색적 공상과학영화 ‘그녀(Her)’에서 인공지능의 고백 “난 당신 것인 동시에 당신 것이 아니에요(I‘m yours, and I'm not yours)”도 명대사로 꼽힌다.
손예진 주연의 ‘해적: 바다로 간 산적’에서 발군의 조연 유해진이 “바다수영은 민물수영하고는 확연히 다르다”며 내뱉는 수다스러운 대사도 맛이 끝내준다. “파도를 이기려고 하면 뒤지는(죽는) 거여. 구렁이가 담 타넘듯이 파도를 부드럽게. 음∼파∼음∼파. 이것만 기억하면 되는 거여. 등신같이 파∼음∼파∼음 하면 뒤지는 겨.”
②최악의 대사=영화 ‘마담 뺑덕’에서 천형(天刑)을 받은 듯 눈이 멀게 된 대학교수 심학규(정우성)가 목이 터져라 딸에게 부르짖는 대사 “청아! 청아!”는 영화 ‘해운대’의 클라이맥스에서 박중훈이 딸에게 하는 절규 “내가 니 아빠다!”에 버금가는 최악의 대사가 아닐 수 없다. 순간 객석은 감정이 북받쳐 오르기는커녕 개그콘서트를 보는 듯 폭소가 터진다.
이정재 주연의 액션영화 ‘빅매치’ 속 “때리는 건 기술이지만 맞는 건 영혼이다”와 브래드 피트 주연의 전쟁영화 ‘퓨리’의 “이상은 평화롭지만 역사는 폭력적이다(Ideals are peaceful. History is violent)”도 있어 보이는 대사이긴 하지만, 영화의 정조와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는 뜬금없는 대사에 속한다. 영화 ‘인간중독’ 속 남자(송승헌)의 대사 “당신을 안 보면 숨을 쉴 수가 없어”와 여자(임지연)의 대사 “자기(당신)가 전부고 유일하고 내 우주예요”와 더불어, 2억 달러짜리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에서 옵티머스 프라임의 대사 “전설은 실재한다(The legends exist)”도 그 진부함과 상투성이 토할 수준이다.
③최악의 제목=단연 ‘마담 뺑덕’. 심청전을 현대적으로 비튼 속 깊고 실험적인 영화임에도 제목은 무슨 성기 일곱 개 달린 남자의 엽기에로코미디 같은 냄새를 풍기는 바람에 보고 싶은 마음이 애당초 싹트지 아니한다.
‘역린’이란 제목도 도대체 뭔 말인지 몰라 손해 본 케이스(심지어 영화를 보고 나서도 ‘역린’이 뭔 말인지 여전히 모르겠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에 의해 파괴 위기에 놓인 위대한 예술품들을 구해내는 임무를 띤 특수부대의 이야기 ‘모뉴먼츠 맨: 세기의 작전’도 ‘세기의 작전’이란 그럴듯한 부제를 소심하게 달긴 했지만 여전히 애매모호해 흥행 참패를 부른 자충수다.
반면 멋진 제목으론 첩보액션영화 ‘노벰버 맨(The November Man)’을 꼽을 수 있는데, ‘11월(November)이 되면 나뭇가지의 잎들이 모두 떨어지듯이 이 남자가 한 번 쓸고 지나가면 살아남는 자가 한 명도 없다’는 놀라운 뜻이 숨은 비유적 제목. 다만 한 가지 흠은 이 제목만 보고는 서울 강남에 사는 황혼노인들의 눈물겨운 로맨스로 착각하게 되는 바람에 아예 극장을 찾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지은 영화제목도 있다. ‘아저씨’를 만든 이정범 감독의 야심작 ‘우는 남자’는 톱스타 장동건을 또다시 흥행에 ‘우는 남자’로 만든 영화. ‘신의 한 수’는 미남배우 정우성에겐 내면연기와 액션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신의 한 수’ 같은 선택이었다. ④최악의 포스터=10대를 타깃으로 한 영화 ‘패션왕’ 포스터는 영화 스스로 ‘나 재미없고 유치하기만 해요’라고 고백하는 듯한 ‘자살골’ 포스터. 남성미를 풍기는 배우 차승원을 ‘하이힐’이라는 여성성 제목과 겹쳐놓음으로써 ‘충돌’의 포스트모더니즘을 직조하려 했던 영화 ‘하이힐’의 포스터는 오히려 인지부조화와 왕짜증만 불러일으키면서 흥행을 주저앉혀 버린 안타까운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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