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오가는 농담이다. 인사철을 앞두고 승진을 위해 막판 스퍼트를 벌이고 있는 대리들 사이에서, 부하 직원들에게 실적 110% 달성을 강조하는 영업 담당자들 사이에서도 이런 말이 오간다.
얼핏 봐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 농담이 떠돌기 시작한 건 이달 초 ‘정부에서 업무 성과가 심각하게 떨어지는 정규직을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내용이 보도되기 시작한 뒤부터다. 앞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정규직에 대한 과잉보호로 기업이 신규 채용을 못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12월의 첫날,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출근을 해 인터넷 뉴스를 보던 직장인들은 멘붕(멘털 붕괴)에 빠졌다. 사람들은 보도 내용을 이렇게 받아들였다. ‘성과가 엄청나게 좋았던 직원이 어느 날부터 갑자기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아무리 정규직이라도 쉽게 해고될 수 있겠구나’라고. 그러니 직장에서 ‘성과를 많이 내면 안 된다’는 실없는 농담이 오가게 된 것이다.
정부의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직급이나 능력에 맞는 임금 체계를 확립하고, 정규직 채용 규모도 늘려보자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적어도 누리꾼들에게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나마 있던 근로 의욕까지 꺾어버린 듯했다.
누리꾼들의 주된 반응은 ‘앞으로 눈에 띄지 않게 찔끔찔끔 성과를 내야겠다’ ‘가늘고 길게 살 생각만 해야겠다’였다. 풀(Full) 야근을 해서라도 높은 성과를 내자고 말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거의 없었다. 정부의 성급한 접근이 문제만 악화시킨 셈이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누리꾼들의 ‘어그로(Aggro)’만 끈 것. 어그로는 도발(aggravation)이나 침략(aggression)을 축약한 은어다. ‘어그로를 끈다’고 하면 일부러 상대방을 도발해 공격을 유발한다는 말이 된다. 주로 양성 평등, 지역감정, 군 복무 문제처럼 첨예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소재가 동원된다.
우리 사회는 고용불안 문제로 고통을 겪은 경험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지난달 13일 개봉한 영화 ‘카트’에 대한 누리꾼들 반응만 봐도 그렇다. 이 영화는 2007년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직후 일어났던 이랜드 홈에버 노조의 파업을 다루고 있다. 영화 소개 페이지에는 ‘영화라고 믿고 싶지만 엄연한 현실’ ‘영화를 보러 왔다가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고 나간다’는 댓글이 달려 있다. 영화에 몰린 관객은 지금까지 78만 명에 이른다.
사실 정부가 누리꾼의 어그로를 이끈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중순에는 보건복지부의 고위 관계자가 ‘싱글세(1인 가구 징세)’ 이야기를 꺼내들었다가 누리꾼들의 거대한 반발과 조롱에 시달렸다. 복지부가 직접 나서 해명을 했음에도 논란은 한동안 수그러들지 않았다. 정부가 이렇게 누리꾼들의 어그로만 끌다가 누리꾼들의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제발 정책을 말할 거면 좀 신중히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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