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영(가명) 씨의 남편은 2002년 12월 뇌출혈로 쓰러져 13년째 와병 중인 1급 장애인이다. 사지가 마비되어 의사소통은 물론이고 혼자서는 일상생활을 전혀 할 수 없는 이른바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 명의의 채무로 인해 채권자들의 추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 씨는 남편이 개인파산을 신청하여 지긋지긋한 채권추심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그러나 파산 비용도 문제이거니와 누워 있는 남편을 대신해 서류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라 차일피일 해결을 미루어 왔다. ○ 부인이 법원에 남편 후견인 지정 신청
이러한 경우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김 씨가 의식불명 상태에 있는 남편을 대신해서 사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후견인으로 선임되는 것이다. 김 씨는 법원에 후견인 지정 신청을 했다. 현행법상 후견인은 가족 외에도 지방자치단체장이 신청할 수 있으며 법원이 최종 판단을 내린다.
후견인은 미성년자인 아이의 부모가 없을 때 주위 친인척이 아이를 대리하여 사무를 처리하는 제도다. 성년인 어른일 때도 이 후견인 제도가 이용된다. 과거에는 금치산자나 한정치산자 선고를 하면서 후견인을 선임하였다. 그러다 2013년 7월 1일부터 금치산·한정치산 제도가 없어지고 그 대신 성년후견인 제도가 시행되었다.
성년후견인 제도는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 등 세 가지 법정후견과 사인 간의 계약인 임의후견으로 나뉜다.
성년후견은 피후견인의 권리를 가장 많이 제한하는 후견 유형이다. 한 번 후견인으로 선임되면 그 후견인이 스스로 사임하거나 법원이 후견 종료의 심판을 하지 않는 한, 피후견인이 사망할 때까지 피후견인의 거의 모든 것을 대신하게 된다.
한정후견은 피후견인의 사망 시까지 지속적인 후견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는 성년후견과 같다. 다만 후견인은 피후견인의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없다. 법원이 정해 놓은 범위 안에서 피후견인은 후견인의 동의 없이 의사 결정을 할 수 있고, 이에 대해 후견인은 그 결정을 취소할 수 없다.
특정후견의 경우 특정후견인이 선임되더라도 피후견인은 대부분의 생활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 그 대신 특정후견인은 피후견인의 의사 결정을 돕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 부동산 문제, 사기, 성범죄 등 피후견인이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무에 대해 1∼2년, 길어야 5년 이내에 특정후견인이 대신 사무를 처리하는 식이다. 이 경우 특정후견인으로는 친족보다 관련 사건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제3자가 더 적절할 수 있다.
아직까지는 후견인 제도를 기존의 금치산·한정치산 제도와 같은 걸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 성년후견의 비율이 높다. 이런 상황이 고착될 경우 피후견인의 권리를 박탈하는 데 이용될 우려도 있다. 따라서 피후견인의 의사 결정과 자립 능력을 키우는 특정후견 제도를 더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 중 선택
후견인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법정후견의 차이점과 장단점을 파악한 후 본인의 구체적인 사정에 맞는 것을 신청하면 된다. 심판청구서 양식과 필요한 구비서류들은 서울가정법원 홈페이지에 후견 종류별로 마련돼 있다. 발달장애인의 경우에는 보건복지부에서 위탁해 운영되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성년후견 중앙지원단’에 연락한 뒤 청구서 작성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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