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미국 법무부가 애플, 구글, 인텔, 어도비, 픽사, 인튜이트 등 실리콘밸리 기업 여섯 곳이 ‘셔먼 액트’로 불리는 미국의 반독점법을 위반했다고 기소했다. 이들의 혐의는 ‘노동시장에서의 담합’이었다. 이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서로 간에 직원을 빼가기 위한 전화나 e메일을 돌리지 말자는 일종의 신사협정을 맺어놓고 있었다. 미 법무부의 반독점 담당관들은 이런 합의가 “노동시장의 일반적인 가격 설정 메커니즘을 저해했다”라고 기소장에 적었다.
지적을 받은 정보기술(IT) 기업들은 바로 백기를 들었다. 앞으로 서로 간의 노동자 이동을 막기 위한 어떤 협력도 하지 않겠다고 서약했다. 이와는 별도로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집단소송 건에서는 당시 직원 6만4000여 명에게 최소 1인당 4000달러(약 450만 원)씩을 보상해 준다고 제안한 상태다.
이 사건은 노동시장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시각 차이를 보여준다. 미국에선 기업이 자유롭게 노동자를 선택하듯이 노동자도 자유롭게 기업을 옮겨 다닐 수 있어야 건강한 시장이라고 본다.
한국의 기업 문화는 충성심을 더 강조한다. 직원이 경쟁 업체로 이직하겠다고 하면 우선 기술을 훔쳐간다고 의심하는 기업인이 많다. 상도덕을 어겼다는 비난도 쏟아진다. 아예 채용할 때 직원에게 일정 기간 동종 업체로 이직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도록 강요하는 회사도 부지기수다. 때론 그 제한 기간이 2, 3년에 달한다.
이직하려는 노동자를 잠재적 기술 유출범으로 보는 악습은 개인의 인권 침해 차원을 넘어 경제 효율성의 문제를 일으킨다. 개별 기업으로 보면 핵심 인력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싶은 게 당연하지만, 전체 경제 측면에선 노동자들이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일자리로 자유롭게 옮겨 다닐 수 있어야 생산성이 극대화된다. 실리콘밸리의 여섯 기업이 인권 관련법이 아닌 반독점법으로 기소된 것도 미 법무부가 이것이 미국 경제에 해가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지난주 열린 동아비즈니스포럼에서 마이클 포터 미 하버드대 경영학과 교수도 같은 지적을 했다. 그는 정규직의 과보호가 노동시장을 경직시키는 측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업이 직원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좋은 노동자를 얻기 위해 경쟁을 해야 임금 수준이 올라간다. 경쟁이 없는 자본주의는 고장 난다”고 했다.
요즘 한국 정부도 노동시장 유연화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현재까지 나온 논의들은 대부분 정규직의 보호막을 내려 일자리 경쟁을 촉진시키는 데 집중돼 있다. 정부가 대기업 정규직의 직업 안정성을 떨어뜨리려 한다면 최소한 이직이라도 자유롭게 하게 해줘야 직장인들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동종업계 취업 제한 등으로 기업이 노동자들을 손아귀에 꼭 쥔 채로 정규직의 혜택만 줄인다면 노동시장의 효율성이 올라갈 것이라 기대할 수 있을까. 포터 교수의 말을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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