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346>찬밥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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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밥
―전남용(1966∼)

즐거움을
함께하지 못한
― 찬밥이 있다

즐거움이
끝나고

더는 즐거움이 없을 때
찾는

― 찬밥이 있다

뜨거운 시간을
홀로 식혀온
― 찬밥이 있다


안방에서 친구들과 법석을 떨며 놀다 보면 아랫목 이불 속에 묻혀 있던 밥주발이 나동그라지곤 했다. 어머니가 알세라 찔끔해서 혀를 날름 내밀며 황급히 수습했던, 보온밥통이 없던 시절의 한겨울. 삼시 세끼 식구들에게 더운밥을 먹이고 싶은 게 어머니 마음이다. 그래서 식은 밥은 쌓여 어머니 차지가 된다. 간혹 다른 식구들 앞에는 갓 지은 밥이, 내 앞에는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묵은 밥이 놓일 때면 열등한 식구 취급을 받은 듯 서러운 기분에 발끈하기도 했다. ‘밥’에는 ‘차별’에 대한 원초적 감각이 담겨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더운밥이 넘쳐나도 아랫사람이나 미운 사람이나 강아지한테 굳이 찬밥을 주는 것이다. 밥의 물질성보다 ‘정신성’을 중시하는 것!

‘찬밥’은 하찮게 여겨지고 홀대받는 상황의 은유다. 사랑이나 존중을 받지 못하는 처지가 ‘찬밥 신세’다. ‘즐거움을/함께하지 못한/― 찬밥이 있’단다. 화자는 자기가 어느 자리에서고 환영받는 인기인이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함께할 만한 자리인데, 함께하고 싶은 자리인데, 초대받지 못했다. 절절한 소외감으로 마음이 시리다. ‘즐거움이/끝나고//더는 즐거움이 없을 때/찾는’다니, 어쩌면 파티의 스타가 나중에 화자를 찾아와 그 ‘뒷담화’를 잘났다고 떠벌려 화자를 거듭 ‘찬밥’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이 시가 실린 ‘새를 날려 보내는 방법’은 전남용의 첫 번째 시집인데, 기발한 착상을 잡은 짧은 시가 많다. 고양된 순간에 팍 떠오른 시상을 잡는 순발력이 돋보인다. 간결한 시어에 때때로 시인의 ‘뜨거운 시간을/홀로 식혀온’ 내력이 섬광처럼 번득인다.

황인숙 시인
#찬밥#전남용#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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