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미국의 공권력이 도를 넘고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1일 03시 00분


[미 중산층 현장보고서 아메리칸 드림은 없다]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보스턴대 사회학 박사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보스턴대 사회학 박사
“동영상엔 분명 살인이 있었는데 정의는 없었다.”

“이제 새로운 시민권 운동이 있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멈춰야 한다.”

“미국인들은 이 이상 뭘 더 봐야 하나? 이래선 안 된다. 적어도 이게 국가라면.”

미국 뉴욕 시에서 에릭 가너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목을 졸라 숨지게 한 경찰관에 대한 불기소 결정에 항의하기 위해 거리에 나선 성난 시민들이 쏟아낸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다. 미국의 공권력 사용이 도를 넘고 있다. 이에 대한 시민들의 항의는 하루 이틀 일어난 일이 아니다. 9·11테러 이후 정도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 공권력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확실히 넘었다고 주장한다.

미국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 특히 우리나라 공권력이 ‘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낮에 경찰이 범죄혐의자를 길거리에서 목을 조여 죽일 수도 있는 가공할 만한 힘을 지닌 미국의 공권력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미국이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 공권력이 센 데는 이유가 있다. 다인종과 다민족이 섞여 사는 이민 국가이다 보니 각 인종의 문화적 특성을 고려해 일일이 사정을 다 봐주고 이해해주면 혼란만 가중되기 때문이다. 모든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을 관통하는 어떤 공통의 규칙(룰)을 만들고 그것에 의거해 엄정한 법집행을 강행하는 것이다.

알다시피 일반인들이 총기를 소지할 수 있으니 범죄현장에서 경찰들도 시민들이 겁나기는 매한가지다. 이런 상황은 여차하면 가차 없이 경찰이 총기를 난사하는 상황을 빚는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총기 소지와 사용에서 경찰은 역시 갑이고, 시민은 을이 될 수밖에 없다. 경찰이 총을 빼들면 시민들은 바짝 엎드려 순순히 명령에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 문제는 미국의 정당한 공무집행 강도 수위가 점점 도를 넘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이 손을 들라고 해서 손을 들었는데도 총을 여러 발 쏴서 죽이고(퍼거슨의 브라운), ‘난폭한 행동을 보이는 환자가 있다’는 병원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가 교통사고 부상자인 20대 흑인 환자에게 총을 쏴 죽이기도 하고(시카고의 앤더슨), 운전면허 갱신을 거부당한 93세 할머니가 차 열쇠를 주지 않는 조카에게 총을 들고 화를 낸다는 이유로 총격을 해 죽이고(텍사스의 골든), 장난감 권총을 휴대한 12세 소년을 쏴서 죽이더니(클리블랜드의 라이스), 급기야 이번에는 ‘가치담배’를 팔았다는 혐의로 경찰관들이 목을 조르자 계속해서 숨이 막힌다고 절규하는 남자를 질식사시키는 일까지 벌어진 것이다(뉴욕의 가너). 위에 열거한 사건들은 모두 올 한 해 언론에 알려진 경찰의 공무집행 중 발생한 살해 사건들이다.

과연 이런 것을 정당한 법집행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미국 시민들은 여기에 대해 단호하게 ‘노’라고 말하기 시작하고 있다. 게다가 피해자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흑인들이다.

하버드대의 브루스 웨스턴과 텍사스대의 베키 페티트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경제활동을 하는 미국 흑인 12명 중 1명이 감옥에 있다. 백인은 87명 중 1명꼴이다. 이런 결과에 대해 일각에서는 정황상 피부색과 인종으로 용의자를 추적하는 ‘인종 프로파일링’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애틀랜틱미디어 편집국장 로널드 브라운스타인은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기고에서 “퍼거슨의 브라운은 죽지 않고 살아있더라도 지금 경찰과 옥신각신했다는 이유로 기소돼 감방에 갔을 것”이라며 흑인에 대한 미 공권력의 무자비함이 도를 넘고 있다고 비판했다.

더구나 퍼거슨의 브라운 사건과 뉴욕의 가너 사건 모두 가해 경찰을 기소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판가름하는 대배심에서 경찰에 대해 불기소 판결이 내려졌다. 가해 경찰의 잘잘못을 따지는 재판마저 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결정이다.

하지만 일련의 일들을 인종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고삐 풀린 공권력의 인명 경시에서 빚어진 일이라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앞에 열거된 사건들은 공론화되었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다. 미 연방수사국(FBI)에 보고도 안 된 채 그냥 묻힌 경찰에 의한 시민 사망 사건이 더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이 2007∼2012년 105개 경찰 내부 자료와 FBI의 통계를 자체 조사한 결과 45%(550여 건)의 경찰 살해가 FBI 통계에서 누락됐다. 같은 기간 미 전역의 753개 경찰서가 FBI에 보고한 공무 중 살해 건수는 2400여 건이고, 나머지 1만8000개 경찰서는 단 한 건도 보고하지 않았다.

퍼거슨 시위를 보는 미국 지식인들은 이번 일에 대해 가치담배를 몰래 팔다 걸린 것이 누가 봐도 현장에서 목이 졸려 죽을 정도의 잔악무도한 범죄는 결코 아니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법치라기보다는 ‘악치(惡治)’ 혹은 ‘폭치(暴治)’에 가깝다.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나온 공권력이 오히려 시민을 위협하는 상황 앞에서 지금 미국인은 분노하고 있다. 개를 끔찍이 위하는 나라에서 사람 목숨이 개보다 더 중하다는 것을 잊은 것은 아니냐면서 말이다.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보스턴대 사회학 박사
#공권력#퍼거슨 시위#브라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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