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찬의 SNS 민심]“신종 카스트” 여론 뭇매 맞은 정부 중규직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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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이달 초 정부의 이른바 ‘중규직’ 도입 검토 소식이 전해진 뒤 노동 형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중규직이란 기간제 정규직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중간 고용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입사 초반엔 호봉제, 중반엔 직무 성과급제, 후반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복합 임금체계를 골자로 한 정부의 중규직 안은 여론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여기에 비정규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 ‘카트’가 상영되고 윤태호 작가의 인기 웹툰을 드라마로 만든 ‘미생’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비정규직 문제가 겨울의 초입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이다.

지난 한 달간(11월 11일∼12월 10일) 트위터와 블로그에서 ‘비정규직’을 언급한 문서는 7만3784건 검색됐다. 그 이전 한 달(10월 11일∼11월 10일) 3만5654건의 두 배에 이르는 수치다. 중규직 문제가 처음 보도된 12월 1일 하루에만 6655건이 언급돼 비정규직 이슈를 다루는데도 중규직 문제가 핵심적으로 거론됐음을 보여 주었다.

중규직을 신종 카스트 제도라며 “그럼, 대통령만 두지 말고 중통령도 두라”는 트윗은 2000회가 넘는 리트윗을 기록했다. 중규직을 옹호하는 글은 지금까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정부도 일단 한발 물러서 있는 상태이다.

특히 비정규직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룬 영화와 드라마가 비정규직에 대한 연민을 키웠다. 부지영 감독의 영화 ‘카트’는 같은 기간 19만9806건이 언급돼 높은 관심을 보였다. 계약직 장그래의 활약상을 다룬 드라마 ‘미생’의 인기도 대단하다. 같은 기간 ‘미생’은 21만3452건 언급됐다. “우리 아빠 오늘 미생 처음 봐서 중간에 엄마한테 ‘근데 장그래인가 걔는 멀쩡하게 생겼고 일도 잘하는 거 같은데 왜 이렇게 무시받는 거야’라고 물어봤더니 엄마가 ‘쟤 계약직’이라는 한마디에 아빠 바로 ‘아’ 하고 수긍함”이라는 트윗이 450회 이상 리트윗됐다. 주인공 장그래 캐릭터가 비정규직 문제로 읽히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비정규직과 함께 언급된 전체 연관어 1위는 1만7252건의 ‘노동자’였다. 2위는 1만3279건을 기록한 영화 ‘카트’가, 3위는 8454건의 ‘해고’가 차지했다. 사람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고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4위는 7118건을 기록한 ‘학교’가 차지했는데 학교 비정규직 문제를 언급한 트윗이 폭넓게 퍼져 나간 것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가령 “지인 아이의 담임이 공부 못하면 이런 사람 된다고 하며 예를 든 직업군이 학교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분들이었다”는 얘기가 800회 이상 퍼져 나갔다.

5위는 7081건의 ‘문제’, 6위는 6847건의 ‘정부’, 7위는 5431건의 ‘기업’이 차지했다. 이는 국민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기업의 책임보다는 정부의 책임을 조금 더 크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8위는 5294건의 ‘차별’이었고, 9위는 5213건의 ‘파업’, 10위는 4894건의 ‘임금’이 차지해 비정규직과 함께 임금차별과 이에 따른 파업 등이 많이 연상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비정규직에 대한 여론의 흐름을 볼 수 있는 긍부정 연관어 1위는 8802건을 기록한 ‘좋다’가 차지했는데 이는 영화 ‘카트’가 ‘좋다’는 것과 좋은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언급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2위는 2369건의 ‘실패’가 차지해 비정규직 보호법의 실패를 지적했고 3위에는 1897건의 ‘처우 개선’이 올랐다.

한 사용자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서는 정규직의 양보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정말일까요?”라는 트윗을 올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정규직의 양보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비판하기도 했다. 4위는 1432건의 ‘낮다’가 차지해 임금 수준이 정규직에 비해 낮다는 사실을 지적했고 5위에 오른 ‘잘하다’(1292건)는 대체로 ‘카트’ 연기자들의 연기에 대한 묘사가 많았다.

정부가 성장 중심의 경제 기조를 짜면 필연적으로 노동 유연성을 더 강조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이 꼭 책상머리의 상상력대로 되지는 않는다.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소득 불평등이나 사회 양극화 문제가 강한 충돌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규직 같은 땜질 처방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다. 여야와 정부, 기업, 노동계가 머리를 맞대고 우리 사회의 미래를 재구축한다는 관점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보다 깊게 논의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카스트#중규직#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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