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93>“너는 내게 모욕감을 줬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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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지는 않지만 절묘하게 상처를 주는 여자가 있다. 아픈 곳만 골라 모진 말로 타격을 가한다. 그런 옷이 어울리기는 하냐는 둥, 능력도 없으면서 욕심만 많다는 둥, 그러니까 회사에서 승진을 못하는 것 아니냐는 둥. 남자 친구나 남편은 그런 말을 들어도 싸다고 믿는다. 어떻게 하면 상대를 아프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전문가급인 여성도 있다. 어릴 때부터 주먹 한 방으로 끝내던 남자들과는 달리, 관계를 놓고 밤새 고민하며 쥐고 비틀어본 노력의 산물인 듯도 하다.

상처 주는 말에 반응이 미지근하면 다음 단계로 ‘비교 미사일’을 발사한다. 형부며 친구의 남자 친구, 동창생까지 단계적으로 동원해 눈앞의 남자를 가장 한심한 인간으로 만들어 놓는다.

웬만큼 찔러서는 끄덕도 하지 않는다는 평소의 경험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분이 상해 낯빛이라도 변하면 “남자가 쩨쩨하게…”라는 비난으로 이어지니 상처를 주고야 말겠다는 의지는 실패로 귀결되는 법이 없다.

그런데 이런 여성은 마음 휘젓는 데는 전문가면서 앙금이 남자의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다는 점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다 쌓인 양이 한계를 넘는 순간 남자 특유의 ‘한 방’이 나온다.

“너는 사람을 피곤하게 해.” 남자가 이별을 선언하며 남긴 한마디에 여자는 ‘멘붕’에 빠진다. 그 말의 의미를 되새기며 배신감에 몸서리를 치고, 사과를 받아내겠다면서 수백 번 전화를 건다.

그녀에겐 ‘피곤하게 하는 여자’라는 말 자체보다, 상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사실이 더욱 아프다. 가능성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것처럼 펄쩍 뛰는 것이다.

여자의 입장을 들어보면 “심하게 말할 때도 있었지만 생각해주는 마음에서였다”고 한다. 기억은 그럴 수 있으나, 사실은 좋은 의도와 분풀이가 섞여 있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자기 아픈 것만 생각할 뿐, 아끼는 이를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칼럼니스트 임경선이 신작 소설 ‘기억해줘’에 썼던 것처럼 사람은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 주는 운명을 떠안고 살아가야만 하는지도 모른다. 특히 민감한 여성이라면, 하나를 받아도 마음속에서 굴려 수십 배로 만드는 경향이 없지 않다. 약속에 한 시간째 늦으면서 연락도 안 되는 남자 친구, 그로 인해 졸였던 마음이 유야무야 넘어가려는 그의 태도에 불타오르는 것이다.

남자 또한 평소 선긋기를 분명하게 해둘 필요가 있다. 잘못을 했다면 사과를 해야겠지만 지나치게 상처 주는 말에는 이렇게 말해보자. “너는 내게 모욕감을 줬어.”

건강한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단호하게 입장을 밝혀야 하는 것이다.

한상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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