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생명이 남겨놓은 소리 양면성을 지닌 발자국 소리가 빛의 균열에 순응하면 파르르 오감을 느끼는 노을 속 구멍들 먼 바다를 향해 붉은 깃을 세운다
펄럭거리던 돛, 아득히 밀려드는 섬의 물결 지나간 시간, 어스름의 메아리는 그리움보다 쓰라린 공터의 사색을 즐기겠구나, 검은 울음을 다 토해낸 구멍 많은 어느 당산나무처럼
너와 나의 거리가 멀수록 은밀히 포효하는 형상인가, 끼룩끼룩 기러기 떼 날아올라 우리 자리를 힘차게 다독여도 자꾸만 다른 모습이다 앞뒤가 충만한 황홀함으로 더 깊이 더 가벼운 안식으로
또 다른 계절의 문이 숨을 크게 몰아쉰다 네 모습이 편안하다 내 모습도 편안하다
오래전, 일감을 받으려고 한 출판사에 갔었다. 자주 어울리던 친구가 거기 근무하는 바라, 혹시 그와 마주치게 되면 차라도 한잔 얻어 마시며 노닥거리리라는 가외의 즐거움을 기대했다. 과연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지만 차가울 정도로 근엄한 눈빛에 뻣뻣한 태도여서, 차 한잔은커녕, 반가움에 절로 피어나던 내 웃음이 무색했다. 밖에서 보아온 그와 회사 안의 그는 완연히 다른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두 개의 하루를 산다. 아침 해가 여는 낮의 하루와 저녁 해가 여는 밤의 하루. 그 친구처럼 낮의 하루를 호락호락 보내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만큼이나 호락호락 보내는 밤의 하루가 주어져야 할 테다. 정치인 손학규가 ‘저녁이 있는 삶’을 주창한 데는 그런 뜻이 있을 테다.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는 항구다/네 모습이 붉다/내 모습도 붉다’,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는 황혼 무렵, 또 다른 세계로 떠나는 항구. 시간이나 공간이나 이별을 전조하는 국면이다. 노을빛이 두 사람의 안팎을 붉게 물들인다. 눈시울도 붉고 아린 가슴도 붉을 테다. 지나간 낮의 기척과 다가올 밤의 기미가 뒤섞이는 ‘양면성을 지닌 발자국 소리가’ ‘빛의 균열에 순응하면’, 그제야 ‘파르르 오감을 느끼는 노을 속 구멍들’이란다. 이별의 아픔은 이별의 순간이 아니라 그 뒤에 온다. ‘지나간 시간, 어스름의 메아리’인 노을 속에서 ‘황혼이 되면 지금도 가슴이 타는’ 감정이 ‘그리움보다 쓰라린 공터의 사색’으로 성숙해 가는 모습을 감각적으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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