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집권 3년간 북한이 어떻게 변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올해 기자가 입수한 북한 정보 중 가장 놀라운 소식을 전한다.
몇 달 전 평양에 국가가 운영하는 주택거래소가 화려한 준공식도, 보도도 없이 조용히 문을 열었다. 이 소식은 지금까지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북한을 좀 안다면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보일 것이다. 어쩌면 과거 북한이 단행했던 어떠한 경제관리개선조치보다 더 파격적인 변화일 수도 있다.
주택거래소의 등장은 북한이 지금까지 음성적으로 이뤄지던 주택의 사적 거래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국가 거래소를 통해 주택 매매가 이뤄지면 당국이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고 보호해 줘야 할 책임까지 질 수밖에 없다.
북한엔 주택 지분 소유를 명시한 남쪽의 등기부등본과 같은 권리증서는 없다. 매매되는 것은 입사증이라 불리는 국가 주거 허가증이다. 하지만 입사증은 종신 동안 살 권리를 부여하고 상속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재산이다. 중국의 주택 제도가 그렇다.
주택거래소의 탄생은 북한이 공적 소유에 기초한 사회주의 체제에서 사적 소유에 기초한 시장경제로 넘어가는 도미노의 첫 블록을 넘어뜨린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고양이 목에 드디어 방울을 단 것이다. 북한도 그 파급력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평양부터 시범적으로 해보고 지방에도 확대할지를 결심할 것이다.
주택거래소의 설립이 시장경제로 가려는 김정은의 의지 때문인지, 아니면 외화가 궁해 어쩔 수 없이 대다수 주택이 음성 거래되는 현실과 타협한 것인지는 아직 알기 어렵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다. 지금 북한에 절실한 개혁은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렇게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주택거래소의 또 다른 의미는 김정은이 북한 내부의 가장 큰 금맥을 정확하게 찾았다는 것이다. 최근 원자재 가격 폭락으로 지하자원 수출에 외화 수입의 대부분을 의존하는 북한도 치명적 타격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통치자금이 고갈된 김정은 체제가 내년에 위기에 빠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정은은 통치자금이냐, 사회주의냐 앞에서 선택해야 했을 것이다. 이럴 경우 보통은 발등의 급한 불부터 끄는 선택을 하게 된다.
북한은 주택거래소에서 이뤄지는 거래에 수수료를 받는다. 수수료 액수는 매매 가격의 10%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얼핏 날강도처럼 보이지만 북에선 ‘집데꼬’로 불리는 음성적 주택 거래 거간꾼들이 받는 중개료도 입사증 변경에 드는 뇌물비용까지 포함해 10% 이상이다. 북한이 주택 인허가 시장에 뛰어들면 간부들에게 뇌물로 가던 돈이 고스란히 김정은 주머니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진짜 돈줄은 수수료가 아니다. 올여름 북한은 평양 10만 가구 살림집 건설 계획이 사실상 실패하자 개인들에게 파격적인 투자 제안을 내놓았다. 짓다 만 아파트를 완공해 팔면 판매 금액의 반은 국가에 바치고 반은 가지라는 것이다. 최근 평양 고급 아파트 가격이 10만 달러를 호가하고 계속 상승하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매력적인 제안이다. 북한은 반신반의하는 투자자들을 믿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주택거래소가 필요했을 것이다. 나중에 정부가 직접 분양시장에 뛰어들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땅도 공짜이고 군을 동원하면 인력도 공짜니 아파트 장사는 엄청난 수익을 남기게 된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바로 휴대전화 허용이다. 북한으로선 체제 유지를 위해선 휴대전화를 허용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눈에 보이는 돈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북한은 휴대전화 붐을 타고 매년 2억 달러 이상 벌어들인 것으로 추산된다. 개성공단 수입이 1년에 1억 달러가 채 안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돈이다. 매년 통화료 수입도 꼬박꼬박 외화로 들어온다. 주택 거래에 손을 대면 휴대전화와 비교할 수 없는 외화가 생긴다. 대신 당국의 부담도 그만큼 비례해 커진다. 하지만 세상에 쉽게 벌리는 돈이 어디 있던가.
주택거래소의 미래는 물론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다. 과거 북한은 외화 흡수를 위해 국가 직영 외환교환소를 전국에 내왔지만 실패했다. ‘돈쟁이’로 불리는 개인 환전꾼들이 늘 국가 교환소보다 환율을 조금씩 더 주는 바람에 환율 전쟁에서 졌다. 주택거래소도 집데꼬들과의 경쟁이 불가피한 데다 당국이 자금 출처를 조사하는 날엔 사실상 유명무실해진다.
김정일 사망 3주기인 내일이 지나면 김정은을 보는 북한 주민의 눈빛도 달라질 것이다. 김정은은 인민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게 하겠다던 3년 전 약속에 답을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국제적 고립으로 돈을 끌어올 곳이 없는 한 어떠한 개혁 조치도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북한은 꼼짝달싹 못하고 있다.
외부에는 김정은이 군부대를 찾아 호전적 발언을 늘어놓는 모습만 비친다. 흔들리는 내부를 다잡기 위해선 불가피한 일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대북정책 담당자들의 눈에도 얼음만 보여선 안 된다. 귀도 함께 열어 얼음장 밑에서 물이 녹아 흐르는 소리도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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