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 직통전화 꺼놓고는 靑 개편해도 ‘불통’ 못 면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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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직통 전화번호를 받았지만 두 번 시도했는데 모두 꺼져 있었다”는 정의화 국회의장의 발언은 대통령을 둘러싼 오늘의 정국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나중에) 죄송하다는 말을 정무수석을 통해 들었고 수행비서의 번호를 받았다”는 말도 웃어넘길 수 없다. 입법부 수장이 청와대가 열어준 핫라인으로도 대통령과 통화하지 못하고 ‘문고리 권력’을 거쳐야만 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청와대 문건’ 유출 수사가 공직기강비서관실에 파견 근무했던 일부 경찰관 등의 ‘찌라시 제작·유포 사건’으로 마무리돼 가고 있다. 그러나 검찰 수사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여론조사 응답이 63.7%나 된다. 국회는 문건 정국을 빌미로 개점휴업에 들어갔다. 대통령은 연일 ‘창조경제’를 강조하지만 경제도, 국민의 마음도 차갑기만 하다. ‘불통정부’의 자업자득이다. 새로운 국정운영 동력을 위한 특단의 조치로 청와대 개편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건을 둘러싼 분란이 애초 청와대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은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김 실장은 “윗분의 뜻을 충실히 모시는 게 나의 임무”라고 했지만 청와대 밖과는 물론이고 안에서조차 꽉 막힌 소통구조를 방치한 채 윗분의 뜻만 헤아리다가 대통령의 위기, 나아가 국정의 위기를 불렀다. 김 실장이 이재만 안봉근 정호성 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과 함께 인적쇄신의 화살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청와대 개편은 국민의 닫힌 마음을 여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까지 될 수 없다. 인사부터 정책, 민정까지 공식 라인보다는 3인방이나 비선의 보좌에 의존하는 듯한 대통령의 폐쇄적 소통방식이 오늘의 사태를 불렀다.

박 대통령은 여럿이 참석하는 공식 오찬과 만찬 말고는 외부인사 면담은 물론이고 수석비서관이나 장관들과도 정례적 대면보고를 거의 받지 않는다고 한다. 수석이나 장관들이 소관 분야에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모두 청와대만 바라보는 모습이다. 그러니 대통령은 ‘잔심부름꾼’에 불과하다는데도 문고리 권력이 끊임없이 사람들 입에 오르고, 심지어 아무런 직책도 없는 왕년의 비서실장까지 거론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일 때는 3인방 비서관 도움만으로도 일처리가 가능했다. 하지만 국정을 다루는 대통령은 각 부처 장관에게 권한을 나눠주고 수시로 대화하며 국가를 경영해야 한다. ‘정윤회 문건’ 사태 이후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후 처음으로 40% 선 아래로 내려앉았다. ‘콘크리트 지지층’이라는 50대 이상, 영남권 지지층마저 이탈 조짐을 보인다. 박 대통령이 소통 막는 벽을 스스로 허무는 결단을 하지 않는 한, 설사 총리를 바꾸고 청와대를 대대적으로 개편한다 해도 꽉 막힌 정국의 출구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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