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퍼스트클래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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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이상 뜨거운 뉴스가 되고 있는 이른바 ‘땅콩 리턴’ 사건을 보면서 사람의 등급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비행기를 회항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그녀는 과연 퍼스트클래스인가. 비행기 일등석에 앉을 수 있는 상위 1퍼센트의 행복을 최악의 악몽으로 바꾼 그녀. 타고난 행운을 저버린 그녀를 보면서 시골 초등학교 교사였던 친척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모든 일에 열정적이었던 그 선생님은 30년 이상 교사생활을 했는데, 초임 시절에는 학습에서 뒤처지는 아이들을 방과 후 교실에 붙잡아놓고 야단도 치고 회초리도 들면서 닦달을 했다고 한다. 한 명도 뒤떨어지지 않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사 경력을 더해가면서 서서히 깨달았다. 성적만 잣대로 할 때는 뒤처지는 아이들이 다른 기준으로 보면 장점이 많다는 것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더라는 것이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아이, 운동을 잘하는 아이, 착하고 희생적인 심성을 가진 아이, 정직하고 성실한 아이, 그렇게 저마다 다른 아이들의 예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정작 닦달해야 할 아이들은 공부는 잘하지만 건방진 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상위권 아이들이 잘못하면 더 호되게 꾸중했다.

“얘들아, 내가 해마다 새로운 반을 맡아 보니 어떤 반이든 항상 상위 몇 퍼센트와 하위 몇 퍼센트가 반드시 있더라. 네가 아이큐 일등급으로 태어나는 바람에 그렇지 못한 친구가 있는 거니까 네가 잘나서 공부 잘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너보다 못한 친구들에게 보탬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선생님은 아이들이 알아듣건 말건 퍼스트클래스에 속하는 학생들에게 책임감과 사명감을 강조했다. 왜냐하면 대부분 상위권 아이들이 자라서 우리나라의 중요한 직책을 맡을 것이므로 더 높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능력 있는 부모를 만나는 것이나 건강과 재능과 미모를 타고나는 것은 모두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행운이다. 경쟁의 레이스에서 남들과 동일한 출발선에 서지 않고 태어날 때 이미 10km, 20km 앞에서 출발한 셈인데, 뒤에서 열심히 뛰어오는 사람들을 느리다고, 무능하다고 경멸한다면 누가 더 바보인가.

진정한 퍼스트클래스는 비행기의 일등석에 앉은 사람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으로 자신을 격상시키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돈으로 일등석을 살 수는 있겠지만 고급스러운 인격은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윤세영 수필가
#퍼스트클래스#땅콩 리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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