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은 평시엔 정책 연구가 주 업무지만 전시(戰時), 즉 총선이 다가오면 공천 작업의 한 축을 담당한다. 공천의 핵심 기준 중 하나인 지역구별 여론조사를 총괄하기 때문이다. ‘친박(친박근혜) 학살’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2008년 총선을 앞두고 이방호 당시 사무총장은 공천 탈락한 현역의원들의 항의에 여의도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를 들이댔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을 여의도연구원장에 임명하려던 김무성 대표의 계획이 그제 최고위원회의에서 막혔다. 친박의 맏형 격인 서청원 최고위원이 “의원들로부터 우려의 전화가 많이 온다”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서 최고위원은 인재영입위원장에 권오을 전 의원, 국책자문위 부위원장에 안경률 전 의원 등 김 대표와 가까운 친이(친이명박) 인사들이 인사안에 줄줄이 올라온 데 대한 불만도 표시했다.
▷박 이사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였던 2005년 3월 박 대통령이 지지한 행정중심복합도시법 원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의원직과 정책위의장직을 던지고 탈당했다. 수도 분할은 나라를 하향 평준화시키는 망국적 정책이라는 소신 때문이다. 2012년 총선 때는 ‘국민생각’을 창당해 새누리당과 보수혁신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 대선에선 박 대통령 지지를 선언했지만 지금도 친박 사이에선 ‘해당(害黨) 행위를 했던 사람’ ‘로열티가 떨어지는 사람’이라며 거부감을 표시하는 이가 적지 않다.
▷박 이사장에 대한 친박의 비토는 당권을 비(非)박계가 장악한 현실에서 2016년 총선 공천 때 자칫 ‘친박 학살’을 재연할 수 있는 칼자루를 쥐여주는 것 아니냐는 트라우마와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한때 견해를 달리한 사람이라고 해서 당의 싱크탱크 책임자로 앉힐 수 없다면 협량한 집권당이라는 소리가 나오기 십상이다. 새누리당이 종종 거론하는 미국의 헤리티지재단, 브루킹스연구소처럼 전통과 실력을 갖춘 싱크탱크를 만들려면 여의도연구원장 인사에서부터 정파를 초월한 인사 스타일을 선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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