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지하철의 쩍벌남 퇴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지하철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 동영상에 담겨 있다. 다리를 쩍 벌리고 앉은 남성, 일명 ‘쩍벌남’과 그 옆 비좁은 구석 자리에 내몰린 젊은 여성. 하지만 전동차 문이 열리는 순간에 반전이 숨겨져 있다. 여성이 남자를 향해 하이힐 킥을 날리더니 후다닥 내린다. 뜻밖의 응징에 당황한 남자는 바지를 털며 쑥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2010년 세간의 화제를 모은 ‘쩍벌남 응징’ 동영상이다. “속이 후련하다” “좌석마다 칸막이를 만들어 못 넘어오게 해야 한다” 같은 ‘쩍벌남 피해자’의 댓글이 줄줄이 이어졌다. 이듬해에는 50대 쩍벌남이 불편에 항의하는 20대 남성을 때린 ‘쩍벌남 폭행사건’도 벌어졌다. 쩍벌남이 한국만의 골칫거리는 아니다. 미국 뉴욕 시 교통당국이 금주부터 ‘쩍벌남 퇴치’ 캠페인에 들어갔다. 쩍벌남 이미지와 함께 “아저씨, 다리 좀 그만 벌리세요”란 문구가 찍힌 포스터가 각 노선에 등장했다.

▷하루 최대 610만 명의 승객이 이용하는 미국 뉴욕 지하철. 교통 혼잡 시간대의 객차에서 벌어지는 쩍벌남의 매너 실종 행태는 종종 페미니스트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회자됐으나 마침내 교통당국이 본격 캠페인에 나선 것이다. 최근 영국의 일간지 텔레그래프가 이번 캠페인을 보도하자 런던 지하철에서도 ‘쩍벌남 근절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는 시민들 요청이 쇄도했다.

▷지하철 탑승 예절을 지키지 않는 것은 쩍벌남만이 아니다. 복잡한 차내에서 등에 멘 가방으로 다른 승객에게 불편을 주거나 지하철 문이 닫히려는데 황급히 밀고 들어오는 ‘민폐 승객’, 자신이 내릴 정거장도 아닌데 문 앞에 버티고 선 ‘버틸남’ ‘버틸녀’도 있다. 자기 집 안방인 양 큰 소리로 통화하거나 음식을 먹는 모습도 꼴불견이다. 모두 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생겨난 문제다. 쩍벌남의 영어 신조어(Manspreader)가 등장할 정도로 이제 쩍벌남은 글로벌 이슈가 됐다.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다리를 벌리고 앉은 쩍벌남은 부디 기억하길 바란다. 똑같은 요금을 냈으면 제발 앉을 공간도 공평하게!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쩍벌남#지하철#탑승 예절#Manspreade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