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성호]이케아가 두려운 진짜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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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호 사회부 차장
이성호 사회부 차장
18일 경기 광명시 일직로에 공룡이 출현했다. ‘가구 공룡’ 이케아(IKEA)의 한국 첫 매장이 문을 연 것이다. 첫날부터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매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7, 8년 전만 해도 기자는 이케아가 수백만 원짜리 침대, 수천만 원짜리 소파를 파는 업체라고 생각했다. 4년 전 큰아이 책걸상을 알아보던 아내는 “이케아도 모르냐”며 면박을 줬다. 주부나 학부모에게 이케아 제품은 ‘꿈의 가구’다. 화려하지 않지만 단순하고 멋스러운 북유럽 스타일이 잘 살아 있다는 이유에서다.

가격 영향도 크다. 이케아는 종류별로 차이가 나지만 대체로 국내 제품에 비해 저렴하다. 물론 모든 제품이 ‘파격적’으로 싸진 않고 배송 조립을 직접 해야 하는 불편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가구는 비싸다’는 인식이 이케아에서는 100% 진실로 통하지 않는다. 이케아 개장 뒤 국내 업계는 대폭 할인 등 자구책을 마련했지만 시장 잠식은 불가피해 보인다.

문제는 가구업계에 떨어진 불똥이 앞으로 다가올 변화의 신호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은 이케아를 가구업체로만 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는 에너지기업 가운데 하나다. 이케아는 7개 국가에 풍력발전기 96대를 직접 설치해 전기를 생산한다. 광명점 3000개를 비롯해 전 세계 100여 개 매장에 패널 55만 개를 설치했다. 생산된 전기는 공장과 매장에서 쓴다.

한걸음 나아가 상당수 매장에서 태양광 패널을 직접 판매 중이다. 패널 한 세트(약 1000만 원)를 팔면 20만 원짜리 옷장 50개 매출과 맞먹는다. 태양광 패널 설치 때 각종 혜택을 주는 영국 정부의 정책에 발맞춰 신청 대행부터 설치, 보조금 수령까지 행정절차를 대신하는 마케팅도 펼치고 있다. 주한영국대사관의 김지석 선임기후변화에너지 담당관은 “이 시스템의 혜택을 본 고객은 이케아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기후변화를 둘러싼 국제적 트렌드에 적극 대응하는 기업들은 생존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2류, 3류 기업으로 도태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미국과 중국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공동 노력에 전격 합의했다. 이 문제에 줄곧 비협조적이었던 두 나라가 손을 맞잡자 국내외 전문가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기후변화를 피할 수 없다는 절박함과 함께 앞으로 벌어질 에너지시장의 치열한 주도권 전쟁을 예고했다는 평이다. 반면 한국은 어떤가. 실효성 논란을 떠나 이명박 정부가 앞세웠던 ‘녹색성장’은 뒷전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탄소 배출량에 따라 보조금과 부담금을 부과하는 저탄소차협력금제 시행은 내년에서 2020년으로 연기됐다. 정부와 기업 어느 한쪽이 앞장서면 다른 한쪽이 들고 일어나 발목을 잡는 엇박자가 반복되고 있다.

20년, 아니 10년쯤 지나 우리는 ‘에너지 공룡’ 이케아의 국내 상륙을 목격할지도 모른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아마 그때도 지금처럼 공룡의 출현을 손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성호 사회부 차장 starsky@donga.com
#이케아#가구#온실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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