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커피를 몸에 들이부은 곳은 대개 업장이었다. 바(bar)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커피를 공급했기 때문이다. 일 시켜 먹는 곳은 다 똑같은지 19세기 공장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았나 보다. 마르크스가 ‘자본’에 목격담을 이렇게 남겼다.
“여기서 일하는 소녀들은 하루 평균 16시간 반을, 그리고 사교계절(성수기)에는 30시간을 중간에 쉬는 시간도 없이 계속 노동하며, 그녀들의 노동력이 지칠 대로 지쳐 제대로 작업 능률이 오르지 않게 되면 때때로 셰리주, 포도주 또는 커피를 공급함으로써 기운을 차리게 했다.”
하지만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다. 저리 맛있는 것들은 보통 중독성이 있다. 커피는 그중 으뜸이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커피를 마시려니 맛이 없다. 무엇보다 로스팅이 영 아니다. 로스팅은 커피에 특유의 향, 즉 살짝 탄 은은한 훈연 향을 주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대개 매우 강하게 커피콩을 볶는다. 볶는다기보다는 태운다고 할 정도로 로스팅이 과하다. 그 바람에 ‘예민한’ 좋은 향이 다 달아난다.
에스프레소를 마시다 보면 탄 냄새밖에 나지 않을 때도 있다. 좀 과장하자면 보리를 쓰나 커피콩을 쓰나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다. 그러니 “에스프레소는 써서 못 마시겠어”라는 불평이 나올 만하다. 제대로 내린 에스프레소는 그렇게 쓰지 않음에도. 새까맣게 태운 커피콩을 신경질적으로 뜨거운 물에 내린, 탄내 나는 커피는 아마도 서울 사람들이 단체로 겪는 분노조절장애에도 한몫하지 않을까 싶다. 그걸 또 셀프서비스로 받아와 치우기까지 할라치면…. 어휴, 말을 말자.
그럼 맛있는 커피는 뭘까? 차와 와인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고 보면 된다. 갓 우린 차의 섬세한 향, 와인을 연상시키는 신맛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식었을 때도 맛있어야 한다. 형편없는 커피는 식었을 때 맛이 급격하게 나빠진다. 좋은 와인은 그 마지막 향이 오래가듯 좋은 커피도 시작과 끝까지, 전부 맛있다.
커피 맛에는 온도도 중요하다. 특히 우유를 쓰는 라테의 경우 적정 온도는 65도 부근이다. 바리스타들이 스팀으로 우유를 데울 때 우유가 담긴 컵에 손을 대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컵을 손으로 잡고 있기 힘들 때쯤이 65도쯤 된다. 온도가 그보다 더 올라가면 우유에서도 탄내가 나서 커피의 섬세한 향을 다 잡아먹는다. 섬세한 맛을 즐기려면 바리스타가 직접 물을 부어 커피를 내리는 드립 커피가 으뜸이다. 에스프레소는 이름대로 빠르긴 하지만 드립 커피에 비하면 향이 떨어진다.
온도뿐만 아니라 커피에 어떻게 물을 타는가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진다. 호주에는 아메리카노가 없다. 에스프레소에 물을 탄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뜨거운 물에 에스프레스 샷을 부은 ‘롱블랙(long black)’이 있다.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는 게 아니라, 물에 에스프레소를 타게 되면 크레마(crema)가 파괴되지 않아 더 진하고 풍미가 좋다. 에스프레소는 ‘쇼트 블랙(short black)’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도 열심히 찾아보면 물론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겠지만, 커피 한잔 마시겠다고 먼 길을 가고 싶지는 않다. 커피는 한가하게 동네에서 마실 나가 가볍게 한잔 하는 것이지, 각 잡고 ‘한번 해 봅시다’라는 자세로 마시는 것은 아니다. 이런 잡생각을 하다 보면 내 앞에는 이도 저도 아닌 검은 양잿물이 떡하니 놓여 있다.
서른이 넘어 타국 주방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할 때 손이 떨릴 때까지 커피를 마시고 짧은 영어를 써가며 긴 노동을 했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카페인이 채 가라앉지 않아 어두운 방에서 홀로 뒤척였다. 몸은 피곤한데 잠은 오지 않고, 시간은 흘러 새벽이 다가오고, 하루가 다시 시작되고, 그런 나를 커피 한잔이 다시 일으켰다. 나에게 커피란 검고 깊은 힘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커피 한잔에 이렇게 까탈을 부린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필자(32)는 영국 고든 램지 요리학교 ‘탕테 마리’에서 유학하고 호주 멜버른 크라운 호텔 등에서 요리사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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