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주어,
봄은 다 가고 ― 동경(東京)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까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1942년 5월 13일에 쓴 시다. 시인이 일본 도쿄의 릿쿄대 영문과에 입학한 게 그해 4월, 낯선 외지에서 학업을 시작하랴 방 구하랴 정신없었을 테다. 그렇게 ‘봄은 다 가고’, 어느 정도 안정을 찾자 비로소 향수가 밀려왔을 테다. ‘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 멀지 않은 곳에 기찻길이 있을 테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시인이 온종일 하숙방에 있었을 아마 일요일. 다다미 위에는 유리창으로 들어온 저녁 햇살이 아른거리고, 어쩌면 시인은 그 위에 잠시 누워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문득 고국에서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게 꿈 같기만 할 테다. 바로 얼마 전까지 살았던 서울이 가슴 저리게 그립다. 마침 또 지나가는 기차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가 실어다주는 시인의 ‘사랑스런 추억’….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은 시인이 그 전해 12월에 졸업한 연희전문(현 연세대) 근처의 신촌역일 듯하다. 시인은 곧잘 그 정거장에 가곤 했나 보다. 기다릴 누군가가 있어서일 수도 있지만, 막연히 상상 속 여인을 그리는 가벼운 춘정(春情)의 발로일 수도 있다. 청춘 아닌가! 어쨌든 시인은 기차역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기차는 어쩐지 ‘희망과 사랑’을 싣고 올 것 같은 것이다. 기차는 번번이 ‘아무 새로운 소식 없이’ 지나가고, 시인을 멀리 실어다 주었단다. 이 먼 데서 시인은 그 부질없는 기다림을 아름다이 추억한다. 청춘이어서 막막한 기다림에 안절부절 목매었기에. 노동운동가 황광우의 회고록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는 이 시의 마지막 행에서 따온 제목이다. 순탄했건 순탄치 않았건, 후회 없는 젊음을 보낸 사람들만이 이리 노래할 수 있을 테다. 12월 30일은 윤동주가 태어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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