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쓴 영화 칼럼에 달리는 어떤 댓글을 보면 피 칠갑 공포영화보다 살벌하다고 생각될 때가 있어요. 비판을 넘어 인신공격(‘개쓰레기’ ‘변태자식’)에다 음모설(‘돈 먹고 썼다’ ‘주연 여배우와 사귄다’)까지 제기되지요. 뚱뚱하고 마음 여린 저로선 이런 댓글을 볼 때마다 많이많이 상처 받아요. 저도 사랑 받고 싶어요. 세상에 욕먹고 싶어 태어난 사람이 이토 히로부미와 에미넘 말고 누가 또 있겠어요. 양의 해 새 아침이 밝았으니 올해는 양처럼 착하고 따스한 댓글을 더 많이 달아주세요 하는 바람으로 글을 씁니다.
먼저, 올해는 이런 댓글 삼가주세요. 지난해 제가 가장 많이 상처받은 순간은 ‘이병헌 협박 스캔들’을 다루면서 이병헌에게 ‘멋지고 정의로운 남자라는 판타지를 배우로서 끝까지 지켜 달라’고 주문한 칼럼에 달린 댓글을 읽을 때였어요. “이 기자는 정말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 못하네? 맨날 김치와 밥만 먹고 어케(어떻게) 사냐? 그런 개소리요? 결혼해서도 가끔은 ○○(젊은 여성을 뜻하는 비속어) 만나서 인생 즐겨도 된다는 헛소리 임꽈(입니까)?”란 내용이었지요.
저 난감해요. 전 이병헌이 최고 배우이자 유부남으로서 이런 종류의 협박사건에 연루된 자체가 큰 잘못이라고 지적한 건데, 이렇게 정반대로 해석하시면 어떡해요. 된장을 똥이라 하시면 어떡해요. 몰라요. 저를 미워하시기 전에 독해만은 제대로 해주세요. 흑흑.
또 있어요.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을 언급하면서 이 영화 속 유인원 리더 ‘시저’의 리더십을 분석한 칼럼이었어요. “영화를 평론하겠다는 건지 정치적 인문적 소신을 밝히는 건지. 이승재 씨 자신도 정리를 못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난잡하게 보입니다. 하나만 하세요”란 비난의 댓글이 달렸지요. 히잉. 저를 몰라도 너무 모르셔요. 제발 하나만 하라고 하지 말아주세요. 영화도 평론하면서 정치적 인문적 소신도 밝히려고 쓴 글이었으니까요. 잘난 척하려고 쓴 글이에요. 한번 봐주세요.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4D 상영으로 보고난 뒤 ‘4D는 과연 영화의 미래인가’를 밝혀본 칼럼에 대해 달린 댓글은 지금도 제가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할 만큼 충격적이었어요. 세상에! 이런 댓글이 달렸답니다.
“병역면탈 박원순, 박○○(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실명) 군대 가자.”
아니, 4D 상영과 박 시장이 도대체 뭔 관계가 있다는 말씀이세요. 의자가 빙글빙글 도는 것과 서울시정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씀이세요. 이러지 마세요. 눈먼 미움과 분노는 스스로의 영혼을 잠식한답니다. 심지어 이 칼럼에는 “표면적으로는 영화평론처럼 위장되어 있지만…허접쓰레기”라는 증오의 댓글도 있었어요. 근데 이 댓글을 단 분의 아이디(ID)가 공교롭게도 ‘마타도어(matador·흑색선전)’였어요. 마타도어, 하지 말아주세요.
“당신의 글은 짜장면 먹으면서 짬뽕 맛이 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인간 같군”이란 댓글도 저를 무척 신경 쓰게 만들었어요. 왜냐하면 ‘당신의 글’이 주어이므로 ‘인간 같군’이란 서술어와 호응이 되지 않거든요. ‘당신의 글은’이 아니라 ‘당신은’이라고 쓰셨어야죠. 저는 주술 관계가 잘못된 문장을 한 번 보면 3일 동안 계속 그 생각만 나서 미쳐 버릴 지경이 된답니다. 저 좀 살려주세요.
송승헌이 나온 야한 영화 ‘인간중독’을 보고 “우리는 괴수보다 섹스를 더 원하는 현실을 사는지도 모른다”고, 멋있게 보이려고 쓴 칼럼에 달린 두 줄짜리 댓글도 저를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었어요. “현재 섹스에 관한 범죄로 규정된 간통이나 성매매 등의 문제점에 관해서 진지한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란 댓글이었지요. 전 그냥 영화가 야하다고 쓴 거지 간통이나 성매매 등에 관한 법리문제를 다루려 했던 건 아니었어요. 너무 멀리 나가셔서 저 당황했어요.
마지막으로, 제가 어떤 반박도 할 수 없는 강력한 악성 댓글이 두 종류가 있어요. 하나는 “이 영화가 싫으면 안 보면 되지 꼭 보고 나서 토를 달아요”란 글이에요. 저 복장 터져요. 토를 달아 먹고사는 게 제 직업인데 토를 달지 말고 굶어죽으란 말씀이세요? 이건 “회사가 싫으면 그만두면 되지”라고 말하는 거와 똑같잖아요. 회사가 싫어도 어떻게 그만둬요. 잉잉.
또 다른 초강력 악플 하나는 “(흥행)예측을 못하니 평론이나 하는 거지”예요. 맞아요. 흥행예측, 저 못해요. ‘7번방의 선물’도 망할 줄 알았는데 1281만 명이 보았어요. ‘해무’는 대박 날 줄 알았는데 망했어요. 예측 잘하면 지금 평론하고 있겠어요? 벌써 잘나가는 제작자가 되었겠지요. 저도 “평론은 못하니 악플이나 다는 거지”라며 함무라비 법전의 정신에 의거해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양의 해가 밝았으니 이런 나쁜 말은 절대로 하지 않을 거예요.
이런 말이 있어요. ‘토끼는 당근을 먹고 자라고 칼럼니스트는 비난을 먹고 자란다.’ 멋진 말이지요? 방금 제가 만들어낸 말이에요.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수 있고 영화를 바라보는 저의 시선과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알아주세요. 지금은 미생(未生)이지만 언젠간 완생(完生)의 칼럼에 이르기 위해 뜨겁게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우리 함께 드라마 ‘미생’의 명대사를 외쳐볼까요.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바둑이 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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