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356> 해를 보는 기쁨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일 03시 00분


해를 보는 기쁨
―이해인(1945∼)

해 뜨기 전에
하늘이 먼저 붉게 물들면
그때부터
내 가슴은 뛰기 시작하지

바다 위로
둥근 해가 서서히 떠오르는 아침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살고 싶고 또 살고 싶고
웃고 싶고 또 웃고 싶고

슬픔의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어제의 내가 아님에
내가 놀라네

날마다 새롭게 떠오르는
둥글고 둥근 해님
나의 삶을
갈수록 둥글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날마다 새롭게 떠오르는
빛을 내는 해님
만나는 모든 이를
빛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새해 첫 해돋이를 보자고 밤 11시쯤 경포대를 향해 떠난 적이 있다. 그런데 길이 어찌나 막히던지! 난방도 안 되는 낡은 프라이드 안에서 강원도에 들어서기도 전에 온몸이 꽁꽁 얼었다. 결국 아침 여덟 시쯤 설악산 무슨 온천에 도착, 순두부백반 한 그릇씩 먹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도 어찌나 막히던지! 누구보다 먼저 해돋이를 보며 새해를 맞이하려 동쪽 바닷가를 찾아간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다. 방에서 데굴거리며 텔레비전이나 보면서 제야를 보내는 건 가당치 않다고 여긴 젊은 날의 추억이다.

바닷가 수녀원의 청신한 아침. 화자는 ‘해 뜨기 전에’ 눈을 떴을 테다. 창 너머 하늘에 아침노을이 붉게 번진다. ‘그때부터/내 가슴은 뛰기 시작’한단다. 화자는 얼른 일어나 창가로 달려갔을 테다. ‘바다 위로/둥근 해가 서서히 떠오르는’ 장면을 보러. 안녕! 안녕! 나의 아침! 나의 해님! 해는 날마다 뜬다. 그건 자명한 일. 자명한 것은 소중한 줄 모르기 쉽다. 그렇게 하루하루 한 해, 한 해를 허투루 보내다 덜컥 일생이 간다. 그렇게 보낸 일생은 얼마나 짧은가. 하루, 또 하루를 사무치게 소중하고 고맙게 여기는 이의 하루는 얼마나 실하고 길 것인가! ‘날마다 새롭게 떠오르는/둥글고 둥근 해님’, 화자는 마치 어머니를 대하는 어린이처럼 꾸밈없이 사랑과 고마움을 담뿍 담아 정답게 부른다. 아침에 깨어 새날의 해를 보는 단순한 기쁨이여!

그러나 지난해는 얼마나 힘들었던가. 바다와 하늘과 땅에서 들려왔던 그 울부짖음들이 귀에 쟁쟁하다. 2015년은 독자들 모두에게 복된 한 해가 되길 빈다.

황인숙 시인
#해를 보는 기쁨#이해인#해돋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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