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수석비서관과 비서관, 행정관들이 참석한 새해 청와대 시무식에서 강도 높은 기강 확립을 주문했다. 김 실장은 “자기 자신을 위하는 이심(異心), 즉 다른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면서 “충(忠)이 뭔가. 한자로 쓰면 중심(中心)이다. 중심을 확실히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개혁의 선봉장이 돼야 한다”면서 파부침주(破釜沈舟·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의 마음가짐을 요구하기도 했다.
검찰은 ‘정윤회 동향’ 문건 유출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를 오늘 발표한다. 김 실장이 “돌이켜보면 여러 가지 불충(不忠)한 일들이 있어서 위로는 대통령님께, 나아가서는 국민과 나라에 많은 걱정을 끼친 일들이 있다”고 한 것도 문건 파동에 대한 일종의 유감 표명일 것이다. 김 실장에 대해서는 청와대 쇄신을 위해 문책돼야 한다는 요구가 적지 않았으나 이날 발언으로 미루어 대통령의 재신임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김 실장이 이심을 갖고 일했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 비서실의 최고 책임자로서 과연 중심을 확실하게 잡아왔는지는 의문이다.
김 실장은 청와대 문건의 유출을 사전에 막지 못한 데다 유출 사실을 확인하고도 범인 색출과 문건 회수에 소홀하게 대처해 화를 더 키웠다. ‘문고리 권력 3인방’ 비서관들의 부적절한 인사 개입, 그들과 조응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 간의 권력 암투 정황도 관련자들의 진술을 통해 드러났다. 범죄에 해당되는지와 별개로 김 실장이 제대로 비서실을 관리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설사 검찰 수사에서 문건에 등장하는 십상시의 존재나 정기적인 모임이 사실 무근으로 결론이 난다고 해도 김 실장 책임까지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8월 김 실장을 임명한 뒤 “청와대 비서실은 국정 운영을 하는 데 있어서 우리 몸의 중추기관과 같다”고 말했다. 김 실장이 파부침주를 언급한 것은 이런 사명의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국정의 중추기관은 청와대 비서실이 아니라 내각이어야 한다. 비서실이 내각 위에 군림한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힘이 세지니 권력 다툼까지 벌어지게 된 것이다. 더구나 소리 소문 없이 대통령을 보좌해야 할 비서실에서 시끄러운 소리와 좋지 못한 소문이 나서 나라를 뒤흔들고 대통령에게 누를 끼쳤다. 이것이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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