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개봉한 영화 ‘백 투더 퓨처2’가 그린 미래는 2015년이었다. 상상 속의 미래가 마침내 찾아왔지만 정작 2015년 한국 사회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갔다. 최소한 대중문화만큼은.
극장가에선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시절을 그린 ‘국제시장’이 800만 관객을 불러 모았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쎄시봉’과 ‘강남 1970’도 곧 개봉한다.
TV에선 한동안 부진하던 MBC 간판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지난 주말 순간 최고 시청률 35.9%(TNmS 기준)를 찍어 화제다. 20년 전 예능 프로 ‘토토즐’(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을 차용한 코너 ‘토토가’(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덕분이다.
엄정화 김건모 쿨 S.E.S. 터보 같은 1990년대 가수들이 나와 과거 히트곡을 불렀는데 인기 비결은 ‘그때 그대로’ 화면이다. 무대 세트와 카메라 워크는 물론이고 촌스러운 자막까지 고스란히 재현했다. 20년 전 남자 백 댄서 멤버까지 다시 뭉친 엄정화는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섹시하게 춤을 췄다. 음원 차트에선 1990년대 히트 가요가 다시 순위를 싹쓸이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한국 사회가 ‘문화 레트로’ 현상을 겪는 이유는 뭘까. 문화계에선 살기 힘들 때 복고풍 콘텐츠가 먹힌다고 본다. 힘든 현실에서 도피해 (미화된) 과거에서 위로를 얻으려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국제시장’의 흥행에 대해서도 “눈물로 호소하는 영화가 인기를 얻는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그만큼 울고 싶은 사람이 많다는 것”(강유정 영화평론가)이라는 분석이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복고풍 콘텐츠는 공감의 폭을 넓혀 문화의 주 소비층인 젊은층뿐 아니라 윗세대까지 끌어들인다.(20대 가수 아이유와 60대 김창완이 함께 리메이크한 1984년 가요 ‘너의 의미’를 비롯해 수없이 쏟아지는 리메이크 앨범을 보라!)
‘머릿수=돈’인 TV도 마찬가지다. 2차 베이비붐 세대이자 TV를 ‘본방 사수’하는 가장 젊은 세대인 40대 이상 시청자를 잡는 게 시청률 확보에 유리하다. 지금의 40대는 ‘X세대’로 불리며 문화를 누리고 자란 첫 세대다. 1990년대는 이들이 10, 20대를 보낸 시기다. 학창시절을 함께했던 스타를 그때 모습 그대로 다시 보면 열광하는 게 당연하다. 토토가는 ‘가요무대의 X세대 버전’인 셈이다.
배 나온 백 댄서의 몸매에서 세월을 실감하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된 S.E.S. 슈를 보며 중년의 팬은 동질감과 위로를 얻는다. “요정도 늙는구나….”
복고풍 콘텐츠는 사회심리학적으로는 힐링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문화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문화 퇴행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마저 들린다.
‘응답하라 1994’ 같은 드라마가 가능했던 건 그 시절 풍성한 문화 콘텐츠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비롯해 듀스, 패닉, 전람회 등이 활동했던 1994년은 힙합 레게 댄스 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등장한 시기다. 지금은 간판 예능 프로마저도 90년대를 소환해서야 회생할 수 있을 만큼 빈약하다. 힐링도 좋고 시청률도 중요하지만 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선 미래 지향적 콘텐츠가 필요하다.
20년 뒤 ‘응답하라 2015’를 찍는다면 과연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까. 과거만 추억한 2015년에 그칠지, 풍요로운 문화적 토양이 된 2015년으로 기억될지는 우리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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