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조개 상자가 어물전 진열대 앞자리에 있었나 보다. 장을 보는 참이었는지, 지나가는 참이었는지, 화자의 발이 그 앞에서 멈춘다. 큼지막해서 대합이라고도 불리는 개조개. 바다의 탐스러운 열매들, 두툼한 살이 살짝 비어져 나온 개조개를 보고 주부들은 탕이나 찜을 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테다. 화자는 개조개들, 그중에서도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는 한 개조개에 시선이 붙들려 있다. 신발이나 양말을 신은 조개가 있을까만, 화자는 조개의 발을 새삼 맨발이라 느낀다. 제 살던 펄에서 끌어내져 스티로폼 상자에 담긴 개조개를 기다리는 게 뭘까. 우리 모두는 죽음 앞에서 속수무책 맨몸이다. 부처도 예수도 마찬가지였을 테다. 화자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단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개조개의 부르튼 듯 뭉툭한 맨발과 그 천천한 거두어들임이 화자에게 누군가를 떠오르게 한다. ‘아― 하고 집이 울 때/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선 이. 집-가족이 울 때 그러할 이는 가장-아버지이리라. 아버지가 험한 길바닥을 맨발로 헤매듯 온종일을 보내도 집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겼다. 그래도 아버지의 맨발이 삶의 진창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덕에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웠다! 화자 가슴에 캄캄하게 멎어 있는 맨발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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