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다른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지 않고 재산으로 취급하는 ‘노예’는 적어도 수천 년 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존재했다. 신석기시대 농경 생활이 시작되면서 노예제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기록으로는 기원전 1750년경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에서 처음으로 확인된다. 노예가 도망가는 것을 돕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법전에 기술돼 있다.
과거엔 세계적 현자(賢者)들도 노예제를 정당화했다. 기원전 4세기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태어날 때부터 지배당하도록 돼 있는 사람들이 있다”며 노예제를 옹호했고, 1452년 교황 니콜라오 5세는 교황칙서인 ‘둠 디베르사스’를 통해 ‘사라센인과 비기독교도를 세습 노예로 삼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노비 제도는 공식적으로 폐지됐지만 이후에도 상당 기간 노비는 사실상 존재했다. 이후 인권의 개념이 발달하면서 국제 조약과 법률에 의해 현재는 더이상 공식적으로 ‘노예’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노예제를 옹호했던 니콜라오 5세의 58번째 후임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임자의 의도와 정반대로 ‘노예’를 새해 화두로 던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새해 첫 미사에서 “오늘날 많은 사람이 다양한 방법으로 착취당하고 있다”며 “전 인류가 강제 노역과 인신매매 같은 현대적 형태의 노예제에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언급한 ‘현대판 노예’는 노동 또는 성적 착취를 당하거나 열악한 생활을 하는 난민, 소년 병사, 조기 결혼과 장기 밀매 등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일컫는다. 국제인권단체 워크프리재단은 ‘2014년 글로벌 노예 지수’ 보고서를 통해 세계적으로 3580만 명이 현대적 의미의 노예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봤다. 인도(1429만 명) 중국(324만 명) 등에 대규모로 존재하고, 한국에도 9만여 명이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보면 다른 사람들을 ‘노예’로 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하다. 주차 아르바이트생을 무릎 꿇린 ‘백화점 모녀’도, 승무원을 비행기에서 내리게 한 ‘땅콩 부사장’도 상대를 인간답게 대하지 않았다. 스스로 상대방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손님은 왕’이라는 말은 불편하게 느껴진다. 직원들이 손님을 친절하게 대하겠다는 의도일 텐데, 손님 스스로 왕이 되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스스로 왕이 된 손님은 직원들이 노예처럼 비굴해지길 바라는 듯하다. 돈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고, 돈을 벌기 위해 직장에 계속 다녀야 하는 직원들의 처지를 악용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 같아 서글프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더이상 노예는 없다. 형제고, 자매”라고 말했다. 직원은 노예가 아니다. 그들이 직장을 나서면 형제고, 자매다. 손님도 왕이 아니다. 그저 손님 대접만 받으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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