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경제 부문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의상도 경제 활성화를 뜻하는 빨간 옷을 입고 ‘경제’라는 단어를 42번이나 언급했다. “우리 경제의 도약과 정체의 갈림길에서 경제 체질을 혁신하고 새로운 성장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세계 속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대통령의 위기감과 방향은 옳다. 그러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구체적 방법 제시는 미흡했고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성과에 대한 인식은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공공부문 개혁이 모든 개혁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며 지난해 공공부문 개혁을 통해 24조 원의 부채를 줄이고 향후 5년간 1조 원의 복리후생비를 절감하는 성과를 달성했다고 자찬했다. 그러나 공기업 부채가 줄어든 이유는 대부분 알짜 자산이나 사업을 매각했기 때문이지 구조개혁을 통한 비용 축소와는 거리가 멀다. 더구나 정부가 공기업 개혁을 외칠 때 장석효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업체의 법인카드를 받아 수억 원어치를 사용한 것이 드러나 그제 사의를 밝혔다. 눈에 보이는 비리와 방만 경영이 여전한 판에 대통령의 공공개혁 성과 과시는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행정부가 대통령의 규제개혁 의지를 제대로 실행하는지도 의문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3월 규제개혁회의를 주재하면서 액티브X를 당장 없애야 할 대표적인 금융규제로 꼽았다. 그러나 1년이 다 돼가는 어제도 ‘액티브X 같은 낡은 규제에 안주’했다고 같은 지적을 반복해야 했다. 해당 부처인 금융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가 서로 규제개혁을 떠넘긴 결과다.
노동 금융 공공 교육의 4대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데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액티브X처럼 중앙정부 스스로 당장 할 수 있는 개혁도 못하면서 어떻게 공직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한 공무원연금 개혁이나 전국의 기업과 근로자를 상대로 한 노동시장 개혁을 할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 수도권 규제완화 같은 핵심 규제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은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고 “규제 단두대에 올려서 과감하게 풀자”라고만 했다. 대통령의 말이 현장에서 먹히지 않는다면 공무원들이 왜 복지부동한 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물론 경제가 단숨에 좋아지기는 어렵다. 그러나 재정적자 확대와 가계부채 증가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46조 원의 재정확장과 금리인하 등 단기적 부양책을 썼음에도 국민이 경기회복의 온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작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단계 발전한 정책 내용도 거의 없었다. 현재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녹록지 않다. 단기적 경기 활성화를 통해 국민이 온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장기적으로 구조개혁과 체질개선을 통해 성장 잠재력을 높인다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이 집권 3년 차인 이제야 출발선에 섰다. 시간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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