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는 자기 나라와 미국 민주주의의 차이를 이렇게 말했다. “나는 헬렌 토머스의 질문에 반드시 답변하지 않아도 된다.” 백악관 출입기자의 전설인 토머스는 35대 존 F 케네디부터 44대 버락 오바마까지 10명의 대통령을 취재했다. 백악관 회견은 그녀의 첫 질문으로 시작해 “생큐, 미스터 프레지던트”라는 인사로 끝나는 것이 관례였다. 물론 모든 대통령이 그녀를 존중한 건 아니다. 토머스가 미 역사상 최악이라고 비판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거의 질문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라크전쟁을 일으킨 진짜 이유가 뭐냐”고 따지는 기자이니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다.
▷‘1호 기자.’ 언론계에선 청와대 출입기자를 이렇게도 부른다. 대통령을 취재하는 만큼 현안에 대한 이해가 깊고 역량이 뛰어난 기자가 통상 청와대를 맡기 때문이다. 선망의 대상이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청와대 브리핑룸이 있는 춘추관에서 주로 전화취재를 하거나 취재원과 식사를 하며 권력의 동향을 파악할 뿐 요즘엔 비서실을 출입하는 건 꿈도 못 꾼다. 대통령은 주요 행사의 풀 기자가 될 때나 볼 뿐이다.
▷민주화 이전 정부는 비우호적인 기자의 청와대 출입을 사실상 불허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비서실 방문취재를 금지했다가 언론이 반발하자 오전과 오후 1시간씩 허용했다. 청와대와 정부 부처의 사무실 출입을 완전 금지시킨 대통령이 노무현이다. 취재선진화란 미명 아래 개방형 브리핑룸을 도입했지만 실은 ‘기자실 대못박기’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색깔 지우기’에 열심이었으나 출입기자 통제는 이어받았다. 현 정부도 다르지 않다. 언론이 불편한 건 어느 정권이든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제 신년회견에서 장관들 대면보고를 늘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은 기자에게 “청와대 출입하면서 내용을 전혀 모르시네요”라고 핀잔을 줬다. 대면보고 실종에 대한 지적은 청와대 내부와 여권 일각에서도 나오는데 대통령이 전혀 모르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브리핑룸과 화장실, 춘추관 앞마당만 오갈 수 있는 ‘춘추관 출입기자’들이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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