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촛불시위 광풍이 서울 도심을 휩쓸던 2008년 5월 8일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깜짝 간담회’를 열었다. 당시 인적 쇄신 요구가 봇물 터지듯 했다. 기자들의 관심도 온통 인적 쇄신 여부에 쏠려 있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이번에 세게 훈련했는데 뭘 바꾸느냐. 기업에서 최고경영자를 할 때 느낀 건데 사람이 시련을 겪으면 더 강해진다”고 했다. 인적 쇄신 요구를 일축한 것이다.
이틀 뒤 이 대통령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만났다. 난국 타개를 위해 손을 내민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이렇게 조언했다. “전반적으로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가 많이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민심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이 되면 민심과 동떨어진 보고를 받는다든지 밑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모를 수 있다. 잘못된 보고를 하지 않도록 의사소통을 정확히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
같은 달 19일에는 이 대통령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의 정례 회동이 예정돼 있었다. 회동에 앞서 한나라당은 이 대통령에게 전할 A4용지 10장짜리 ‘국민 신뢰 회복 방안’을 만들었다. 보고서에는 내각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해 책임총리제를 강화하고 부처 장관에게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당정청 정책 조율을 위한 정책특보 신설도 건의했다.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은 능력을 재검증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사실상 인적 쇄신 요구였다. 청와대는 ‘수용 거부’를 통보했다. 보고서는 이 대통령에게 전달되지 않은 채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사흘 뒤 이 대통령은 광우병 파동과 관련해 고개를 숙였다. 그것도 네 번이나. 이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담화에서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소홀했다. 송구스럽다”고 사과했다. 당초 ‘유감’이란 표현을 쓰려다가 ‘송구’로 몸을 더 낮췄다. 하지만 국정 쇄신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그날부터 언론은 매일같이 조만간 인적 쇄신이 이뤄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국면 전환에 실패한 이 대통령은 그해 6월 20일 청와대 전면 개편 카드를 꺼냈다. 두 달을 허비한 뒤였다.
박근혜 대통령도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윤회 동향’ 문건 파동과 관련해 “송구스럽다”고 사과했다. 손에 잡히는 국정 쇄신 방안이 없는 점도 7년 전과 닮았다. 청와대 조직 개편과 특보단 구성을 언급했지만 ‘복고풍 쇄신안’이다. 7년 전 한나라당이 만든 ‘국민 신뢰 회복 방안’보다도 감동이 없으니 말이다.
광우병과 문건 파동은 ‘거짓과의 전쟁’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진위를 떠나 정부 신뢰가 추락한 점도 같다. 정권의 위기감 측면에선 광우병 파동이 문건 파동을 압도했다. 하지만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에서 개구리가 뛰쳐나올 생각을 못하듯 위기감이 덜한 문건 파동이 정권에겐 더 독(毒)이 될지 모른다. 더욱이 지금 박 대통령에게는 7년 전 이 전 대통령에게 조언했던 박 전 대표 같은 존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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