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24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다른 나라 국적을 가지고 이라크 시리아 등의 이슬람 테러단체에 가입해 활동하는 테러리스트, 이른바 ‘외국인테러전투원’에 대응하기 위한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당시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엄격한 법 집행과 효과적인 자금 출처 차단 등을 통해 안보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도 “이슬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위해 한미동맹 차원에서 긴밀한 공조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슬람 테러에 대한 지구촌의 발 빠른 국제 공조를 감안해볼 때 우리도 어떤 형태로든 참여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기자는 2012년 리비아와 이집트를 방문해 ‘아랍의 봄 그 후 1년’이라는 제목으로 시리즈기사를 쓴 적이 있다. 정권이 바뀌는 살벌한 상황에서도 한국에 대해 호의를 갖고 있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접하고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대수로 항만 도로공사 등 현지 경제 건설에 적극 참여한 우리 근로자들 덕분에 ‘코리안’ 하면 근면성실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런 생각과는 별개로 이른바 ‘아랍의 봄’ 이후 정치 리더십이 공백에 빠진 상황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부상해 정치세력화하고 국가 간 연대까지 강화하고 있음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단단히 무장하고 있었고 석유 같은 물질적 기반도 갖추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종교적으로 강한 결속력이 있었다. 지금 지구촌을 테러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IS는 결국 이라크 내전과 시리아 내전 와중에 출현한 것이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 무슬림은 14만 명으로 추산된다. 영국 프랑스 독일의 경우 각 나라에 수백만 명이 살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큰 숫자는 아니다. 게다가 한국은 종교적 신념을 서로 존중해주는 모범적인 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테러 무풍지대로 여겨졌던 호주 캐나다는 물론이고 백주 대낮에 세계적인 관광도시의 중심부, 그것도 언론사가 공격을 당하는 상황이다.
이제 지구촌에 테러로부터 안전한 나라는 더이상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의 전쟁 위협으로 신경이 곤두서 있는 우리로서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더구나 전 세계에 기업들과 교민들이 진출해 있으니 어느 나라보다도 위험에 많이 노출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때일수록 대통령과 군 외교당국의 지혜로운 국제 공조가 절실하다고 생각된다. 한미동맹이 중요하다고 대뜸 군사 공조에 뛰어들거나 섣부르게 반이슬람 대응에 나섰다가는 큰 화를 부를 수도 있다. 사안마다 치밀하고 신중한 정책 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파리 테러는 갑자기 터진 게 아니다. 9월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했던 하이다르 압바디 이라크 신임 총리는 “최근 생포한 IS 요원들이 우리 정보기관에 미국과 프랑스에 대한 테러 계획을 털어놓았다. 곧 감행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미국 언론에 밝히기도 했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신년 벽두부터 사이버 해킹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섰다. 11일 유럽의 34개국 정상들이 그 바쁜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한걸음에 파리로 달려간 것은 “파리 테러가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라는 절박감 때문이었다. 한국은 과연 얼마나 긴장하고 있나. 군과 국가정보원 청와대는 다각적 대응방안을 세우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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