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아저씨가 된다는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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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쇼 음악중심’이 3일 방영한 걸그룹 ‘EXID’의 무대. 이 걸그룹의 이름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 걸까요. MBC 화면 캡처
MBC ‘쇼 음악중심’이 3일 방영한 걸그룹 ‘EXID’의 무대. 이 걸그룹의 이름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 걸까요. MBC 화면 캡처
다음 문장을 한번 소리 내서 읽어 보세요.

“걸그룹 ‘EXID’의 ‘위아래’가 새해 첫 주 가온차트 4개 부문(디지털종합, 다운로드, 스트리밍, 소셜)에서 1위에 올랐다.”

지난주 문화면에 등장했던 문장입니다. 다소 뜬금없는 이 테스트의 이유는 바로 ‘EXID’라는 단어 때문입니다. 얼핏 보면 영어 약자 같기도 하고 단어 같기도 한 이 걸그룹의 이름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정답은 바로 ‘이엑스아이디’입니다. 발음되는 대로 ‘엑시드’라고 읽으면 안 되는 것이죠.

퀴즈를 틀리셨다고 너무 민망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도 최근에야 ‘EXID’라는 이름의 정체를 알게 됐으니까요.

지난주 저는 동아일보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www.facebook.com/dongamedia)에 이 걸그룹을 다룬 기사를 띄우고 있었습니다. 기사 링크를 공유하면서 저는 자신감 있게 ‘‘위아래’로 주목받는 걸그룹 엑시드(EXID)의 핵심 안무는…’이라고 적어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이름을 잘못 적었다’는 선배의 지적이 들렸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황급히 게시물에서 ‘엑시드’라는 단어를 지웠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탄식했습니다. ‘나도 아저씨가 되고 있구나’라고요.

제가 스스로를 아저씨로 규정한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들의 이름이 대문자로 표기된 데 아무 의문도 갖지 않은 겁니다. 저도 10대 때는 에이치오티(HOT)를 ‘핫(hot)’으로, 에스이에스(SES)를 ‘세스’로 읽는 무지몽매한 어른들을 비웃곤 했습니다. 제가 비웃던 ‘아저씨’가 된 것이죠. 두 번째 근거는 가수 이름보다 이들의 춤에만 혈안이 된 제 모습이었습니다. 솔직히 이 걸그룹의 영상을 앞으로 두 번 세 번 돌려 가며 열심히 봤습니다. 그룹 이름, 멤버의 이름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이들의 몸짓에만 정신을 팔고 있었던 겁니다.

또 다른 징후도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나도는 최신 유행어를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기 시작했습니다. ‘버카충’이란 약어도 몇 달 전까지 전혀 몰랐습니다. 처음에는 벌레 이름인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포털에 검색을 하고서야 10대들 사이에서 ‘버스카드(교통카드) 충전’이라는 뜻으로 통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린 시절 “당근이죠”라는 말을 들은 어르신들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느꼈던 감정이 이런 것이었을까요.

최근 들어 이런 약어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점도 예전과 달라진 부분입니다. 10대들이 ‘정말 맛있다’ ‘정말 잘 생겼다’는 말을 ‘존맛(×나 맛있다)’ ‘존잘(×나 잘생겼다)’로 줄여 부르는 것을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큰 이득을 봤다’는 말을 ‘개이득’이라고 줄이는 것도 썩 좋아 보이진 않습니다. 굳이 비속어를 섞어야 했는지 의문이기 때문입니다.

아저씨가 되는 건 괜찮습니다. 하지만 이러다가는 언젠가 아이들에게 훈계를 늘어놓는 ‘꼰대’가 될 것만 같아 걱정입니다. SNS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젊은 세대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들의 생각 또한 이해하지 못하게 될 테니까요.

SNS가 활성화하면서 수많은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언론들까지 ‘온라인 소통과 마케팅 강화’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공허한 외침으로 그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구독자가 모두 100만 명인 한 ‘페북 스타(페이스북 유명인)’는 “SNS 세대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기성세대의 언어를 강요하기 때문에 SNS에서 배척당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누리꾼의 문화를 무조건 인정하지는 않더라도, 이들을 제대로 이해해야 최소한의 소통도 가능하다는 겁니다.

SNS를 활성화하고 싶다는 모든 사장님과 기관장님들께 묻겠습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최신 인터넷 유행어는 무엇인가요?

권기범 디지털퍼스트팀 기자 ka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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