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반도에는 러시아 시베리아와 중국 북부지방의 추운 날씨를 피해 날아온 겨울 철새들이 북적인다. 철새들이 한반도를 찾아오는 이유가 있다. 월동지인 한강과 낙동강, 천수만은 평야를 끼고 있어 균형 잡힌 영양 섭취가 가능하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의 낟알에서 탄수화물을 확보하고 하구의 조개류나 어류를 통해 단백질을 보충한다. 그야말로 겨울을 나기에 최적의 장소가 아닌가.
철새들은 먹이를 찾는 데 하루의 전부를 쓴다. 먹기 위해 태어난 생명체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봄에 고향으로 돌아가려면 부지런히 영양분을 섭취해 두어야 한다. 이처럼 먹이를 먹고 있는 새 떼의 사진은 신문에 잘 안 실린다. 멋스러움이 덜하기 때문이다. 신문에 주로 실리는 것은 날갯짓을 하며 창공을 훨훨 나는, 시원시원한 모습이다.
새들의 날갯짓은 평범해 보이지만 심사숙고의 결과이다. 새들은 주로 서식처나 먹이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날갯짓을 한다. 물론 외부의 위협을 피해 후닥닥 날아오르기도 한다.
작은 새들은 의심이 많아 조그만 인기척에도 날아가지만 에너지 소모는 많지 않다. 반면 재두루미와 고니 등 큰 새들은 에너지 소모가 많아 큰 위협이라고 판단될 때만 비행을 결행한다. 그 대신 처음부터 위협 요소로부터 거리를 둔다. 큰 새들은 사람들과 100m 정도의 ‘도주 거리(flight distance)’를 둔다. 돌팔매질 같은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신기한 것은, 먹이를 주거나 자주 본 사람과의 도주 거리는 짧다는 점이다.
낯선 사람이 도주 거리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날갯짓이 시작된다. 사진기자들은 그 순간을 촬영해 독자에게 보여 준다. 하지만 녀석들은 심리적 스트레스를 겪을 뿐 아니라 반나절 섭취한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소진해야 한다. 큰 새들의 우아한 날갯짓에는 이처럼 절박함이 숨겨져 있다.
지난주 야당 대통령 후보였던 정치인이 탈당을 선언하고 날아갔다. 그 거물 정치인은 자신의 탈당을 큰 새의 날갯짓이라고 여겼을지 모르겠다. 한때 자신의 ‘친정’이었지만 지금은 정체성이 모호해진 정당과 거리를 두려는 날갯짓이니 드라마틱하고 뉴스 밸류도 높아 보였다. 하지만 ‘큰 새’를 잃은 야당의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13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중도 개혁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이 확고하다”고 했다. 당원들의 생각도 같다고 했다.
철새들의 날갯짓이 우아해 보이는 이유는, 리더가 무리와 일심동체로 움직이며 군무를 연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큰 새는 쉽사리 날갯짓을 하지 않는다. 심사숙고하다가 진짜 위협이라고 판단될 때에만 움직인다. 그 거물 정치인은 지금 야당이 처한 현실이 탈당을 감행해야 할 정도로 위협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일까. 철새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에너지를 축적한다. 날갯짓만 해 대다 보면 에너지만 소진하다 모든 걸 잃게 된다. 이런 철새의 모습과 거물 정치인의 이미지가 겹치는 게 우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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