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고 나서 나도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본다. 수없이 사용해 왔으면서 세종대왕 왼편 배경으로 해와 달이 뜬 산수화가 있는 것도 처음 보고, 그것이 ‘일월오봉도’라는 것도 이제 알았다. 반으로 접혔던 자국이 있고 한쪽 귀퉁이가 살짝 찢어진 지폐. 얼마나 많은 사람을 거쳐 왔을까. 화폐를 대할 때 우리한테 중요한 것은 거기 명시된 금액이지 생김새가 아니다. 언제부턴가 사람도 그렇게 대하곤 하는 세태가 화자로 하여금 문득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어 바라’보게 했을 테다. 무구한 얼굴로 다소곳이 화자의 눈빛을 받아들였을 만 원짜리 지폐. 그러나 그 제조 과정부터 무구하지 않다. 심미적 효과를 고려한 문양 곳곳에 위폐 방지를 위한 장치가 숨겨져 있다. 화자는 지폐를 살펴보고 반으로 접어보기도 하면서 ‘음과 양의 기가 한 곳에 만나 통하는 세상/얼마나 많은 문양을 완성해야 이루어진다는 말인가’라는 통찰에 이른다. ‘또한 보는 각과 빛에 따라 나타나는 홀로그램은/그 이치가 사람의 마음처럼 보인’단다. 무구한 사물인 지폐여, 너로써 이런 것도 저런 것도 할 수 있는 고마운 지폐여, 그런데 네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여! 아, 돈! ‘얼마나 많은 이 세상의 말을 압축해 놓았으면/돈 앞에서는 할 말을 잃게 할까.’ 시인도 돈이 ‘내 삶의 표현을 갉아 먹고 있’단다.
요즘 여기저기서 떠들썩한 ‘갑의 횡포’를 떠올리면 인간의 몸을 쩍 가르고 튀어나온 괴물의 얼굴을 보는 듯하다. 너무도 돈의 위력을 잘 아는 ‘갑’들. 돈의 위력은 돈에의 공포와 비례할 테다. 사람들이 요물로 만든 돈, 돈이 요물로 만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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