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공간을 채우는 일은 누구에게나 부담이다. 그건 미대 학생이든 세계적 예술가든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미술대학 회화과의 졸업 과제 중 100호(130×162cm) 캔버스 완성이 있는데 학생들은 이를 ‘100호짜리 공포’라 부른다.
중국 출신으로 국제적 명성을 지닌 작가 아이웨이웨이가 독일 베를린에 있는 마르틴그로피우스바우(Martin-Gropius-Bau) 미술관의 중앙 홀을 채워야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그는 나무의자 6000개를 중국에서 직접 가져와 3000m²가 넘는 바닥 전체를 메웠다. 등받이와 팔걸이가 없는 단순한 모양의 나무의자를 설치한 작품, ‘의자들’(2014년·그림)이다. 명나라 이후 수백 년간 중국 시골에서 실제 사용된 의자들이다. 그 규모와 수량이 가히 ‘대륙적’이다.
마치 동양화의 여백을 보는 듯, 벽 등 다른 공간은 그대로 비워두고 바닥만 촘촘히 채웠다. 의자들은 서로 밀착된 채 미술관 중앙 홀의 바닥을 완전히 뒤덮었다. 위에서 전체적으로 보면 제각기 다른 재질과 빛바랜 색깔이 스크린 픽셀을 연상시킨다. 수백 년 동안 사용된 흔적과 마모를 지닌 의자들은 그 자체로 대규모 추상화가 됐다. 19세기 서구 미술관과 묘한 조화를 이루며 중국의 장구한 역사와 엄청난 수량을 과시한 셈이다.
그러나 아이웨이웨이는 2년여 동안 준비한 이 특별전에 참석할 수 없었다. 반체제 작가로 낙인찍혀 2011년 체포된 이후 출국이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무의자 6000개가 침묵으로 증언하듯 작가의 시위는 묵직하며 압도적이었다.
다른 나라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은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걸까? 차이는 창작이고 그 뿌리는 문화에 있는 법. 그런데 이렇듯 지극히 중국적인 작가가 정작 중국에선 환영받지 못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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