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안달 난 남북 대화, 먼 산 보는 안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0일 21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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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준비’에 꿰맞춘 업무보고
외교안보의 선생님은 朴대통령?
창조경제 뒤에 줄선 “창조국방”
능력·財源안 따지고 미래 무기 나열
구름을 먹고는 배부르지 않아
북이 더 급한데 왜 대화에 안달 내나
올해 핵 실전배치 선언時대책은?

배인준 주필
배인준 주필
정부 안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은 ‘VIP(박근혜 대통령)는 선생님이고 우리는 학생으로 선생님의 지시를 철저히 잘 이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윤 장관과 김 실장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지, 두 분에게 묻고 싶다.

해당 외교안보 분야에서 많은 경험과 전문성을 축적한 두 분에게 더 묻겠다. 대통령의 지시는 어떤 허점도 없는 무오류(無誤謬)라고 생각하는가? 또는, 대통령의 지시에 대해 대안적인 판단은 하지 않는 습관이 들었는가? 대통령의 지시 내용에 문제점이나 모순이 발견된다면 간언(諫言)할 용의와 용기는 있는가? 두 분은 대통령의 인사권에 매여 있는 부하요 참모이긴 하지만 ‘선생님의 사랑만 받으려는 학생’은 넘어서야 하리라.

그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미래를 준비하는 국방으로, 창조국방을 추진하겠다”고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했다. 창조국방이란 ‘창의성과 과학기술을 국방업무에 융합시켜 혁신적인 국방가치를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국방’이라는 풀이였다. 나는 여러 번 소리 내어 읽어봤지만 무슨 뜻인지 아리송하다. 만약 많은 국민이 쉽게 이해하지 못할 얘기라면, 대통령은 만족했을지 몰라도 국민에겐 안보에 대한 신뢰감을 심기 어려울 것이다.

국방부가 창조국방을 내세운 뒤인 어제, 장명진 방위사업청장은 한국방위산업학회 초청을 받아 방위사업 계획에 대한 특강을 했다. 장 청장의 발표 내용에는 한 장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창조국방과 연계된 것이 없다. 방위사업청은 ‘최적의 무기체계 획득’을 임무로 하는 국가 국방조직이다. 요컨대 국방부가 그제 발표한 대로 레이저 무기건, 전자기포(砲)건 대북 역(逆)비대칭 전력을 구축하려면 그 사업의 실무부처가 방위사업청이다. 그럼에도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은 이런 중요한 국방계획에 대해 라인업이 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국방부는 능력도 재원(財源)도 안 따지고 우선 대통령 앞에서 현란한 아이디어를 나열하는 것이 급했던가.

북한이 올해 4차 핵실험을 할 가능성, 핵무기의 실전배치를 선언할 가능성, 새로운 형태의 무력도발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올해 국방부 업무계획에서 북한의 새로운 군사적 도전에 맞춤 대응하는 다각적이고 구체적이고 단호하고 유효한 전략과 수단은 찾아보기 어렵다. 국방부는 현실성이 애매한 2020년대 무기체계, 그리고 정보통신기술(ICT)을 몸에 휘감은 2020년대 미래 병사(兵士)의 모습을 전면에 내세웠다. 구름을 먹고는 배가 부르지 않는다.

국가 외교안보의 중심축인 외교부와 국방부에 ‘통일 준비’라는 키워드에 맞춘 업무보고를 하라고 한 것부터 문제가 있다. 국방부는 창조경제를 빼닮은 창조국방에다가 통일 준비를 위한 국방 역량 강화, 통일정책의 군사적 뒷받침, 남북 교류협력 사업에 대한 군사적 지원 등을 올해 중점 업무계획으로 보고했다.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을 비롯한 군 수뇌부가 ‘창조와 통일’에 발맞추느라 당면 안보 위협에 물샐틈없이 대처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동네잔치를 한다고 야경꾼까지 잔칫상 차리는 데 끼어들 일은 아니다. 잔치판이 벌어질수록 동네 분위기가 들뜰 소지가 있으니, 야경꾼은 강도나 도둑이 들지 않도록 방범(防犯) 활동에 더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남북 대화가 잔치가 될지, 재난이 될지 솔직히 알 수 없다. 북한이 우리에게 확인시켜 준 경험법칙은 분명하다. 먹고 튀기다. 대내(對內) 대외(對外) 대남(對南) 혁명역량이 약화되었을 때 대화 카드를 내민다. 1970년대 초반 미소(美蘇) 데탕트 등 국제정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남북 고위급 접촉에 응하고 7·4남북공동성명에 합의했다.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동유럽과 소련의 붕괴에 체제 위협을 느끼자 남북 총리회담에 적극 응하고 남북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서명했다. 그러나 북한은 백 수십 건의 남북 합의 중에 지킨 것이 없다. 1994년 미국과의 제네바 핵합의, 2005년 6자회담에서 핵 포기 원칙에 동의했던 9·19 선언, 2007년 단계별 핵문제 해결을 약속했던 2·13 합의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이런 북한, 더구나 대내외 입지가 약화되어 대남 대화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는 북한과 빨리 대화를 하지 못해 안달이 난 것이 정부 일각의 모습이다. 이 또한 대통령이 선생님인가.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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