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와 함께 하는 대한민국 헌법 이야기]
헌법 제24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
1996년 19세였던 대학생 A 씨는 다가올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주권자로서 처음 투표를 하려 했지만 선거권이 없어 참여할 수 없었다. 당시 선거법에서 선거연령을 20세 이상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A 씨는 선거연령을 20세 이상으로 정한 선거법 조항이 자신의 선거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우리의 정치문화와 국민의 의식 수준, 당시 민법에서 성년을 20세로 정한 취지 등을 고려할 때 위 공선법 조항이 선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와 달리 모든 국민이 주권자로서 직접 국정에 참여해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대신 대의제 원리에 따라 국민이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선출해 그에게 국정을 운영할 권한과 책임을 부여한다. 그리고 다음 선거에서 임기 동안의 정치적 성과를 평가함으로써 대의과정을 통제한다. 결국 민주주의의 성패는 국민의 의사를 왜곡 없이 그대로 대의기관의 구성에 반영할 수 있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제도를 마련하는 것에 달려 있다.
헌법 제24조는 모든 국민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선거권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국민의 선거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지만 누구에게 선거권을 부여할 것인지, 어떤 방법과 절차를 거쳐 대표자를 정할 것인지는 국회가 법률로써 구체적으로 정하도록 했다.
국회가 선거제도를 법률로 구체화할 때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헌법 제41조와 제67조 제1항에서 정하는 보통·평등·직접·비밀의 선거원칙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선거권이란 헌법이 정하는 선거원칙에 부합하는 선거권이어야지, 선거가 통치권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된 과거 3·15 부정선거와 같은 선거가 아니다.
평등선거는 모든 유권자가 동등하게 한 표를 가질 뿐 아니라 한 표가 대표자의 선출에 미치는 영향도 같을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국회의원 선거구 간의 인구편차가 너무 벌어져 유권자의 투표가치에 차이가 있다면 평등선거에 위반된다. 헌법재판소는 최근 선거구 간 인구편차가 상하 33.3%를 넘어서면 평등선거 원칙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직접선거는 간접선거에 반대되는 것으로 유권자가 직접 대표자를 선출하는 선거를 말한다. 유권자의 의사가 직접 대표자를 뽑는 데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취지이다. 과거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 의원의 의석 배분을 정당의 득표수가 아니라 지역구 선거에서 소속 국회의원이 받은 득표수를 기준으로 한 것을 헌법재판소는 직접선거의 원칙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비밀선거는 유권자의 의사결정, 즉 투표의 내용이 알려지지 않을 것을 요청한다. 유권자의 자유로운 의사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특정 후보를 지지할 목적으로 자신이 투표한 투표용지의 사진을 배포한다면 다른 유권자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가할 수 있으므로 비밀선거원칙과 관련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보통선거의 원칙은 국민이라면 누구나 선거권을 가지며 재산·인종·성별·종교·교육 수준 등을 이유로 선거권을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선거권은 귀족 등 특정한 사회적 신분이나 일정 재산을 가진 남자에게만 인정됐다. 그러나 오랫동안의 선거권 확대 운동에 따라 선거권은 신분이나 재산의 정도에 관계없이 성인 남자로 확대됐고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성인 여성까지 선거권이 인정됐다.
우리 헌법은 1948년 처음 헌법을 제정할 때부터 여성을 포함한 모든 국민에게 선거권을 보장하였다. 그러나 누구나 선거에 참여하여 투표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린이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투표를 할 수는 있지만 투표라는 행위가 갖는 법적·정치적 의미와 후보자를 선택할 수 있는 판단 능력이 부족하다. 헌법상 보통선거의 원칙이 인정되지만 그 나라의 역사와 전통, 문화·교육적 여건, 국민의 의식수준 및 미성년자의 신체적·정신적 자율성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이의 하한을 정하는 것이 불가피한 이유이다. 하지만 입법자가 선거연령을 지나치게 높게 설정한다면 보통선거의 원칙에 반하여 국민의 선거권을 침해하게 된다.
1997년 당시 헌법재판소는 선거연령을 20세로 규정한 것이 보통선거의 원칙에 비추어 지나치게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 후 입법자는 시민사회의 성숙도와 국민의 정치적 의식수준 등 우리 사회의 변화를 고려해 선거연령을 19세로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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