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과회사가 과자를 만들 때 경영진이 공장에 ‘알아서 하라’고 맡깁니까? 영양 성분까지 깐깐하게 고려해 ‘이런 제품을 만들라’고 주문을 합니다. 그 뒤엔 제대로 만들었는지 확인을 하죠. 불량품이 있으면 걸러 내고…. 프로농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프로농구와 과자가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걸까. 한국농구연맹(KBL) 김영기 총재(79)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기자를 보며 “얼마 전 오리온스 구단 고위 관계자를 만나서 한 얘기였다”며 말을 이어갔다.
“미국프로농구(NBA)는 경기를 앞두고 구단 고위층과 코칭스태프가 미팅을 합니다. 구단이 ‘이렇게 해 달라’고 주문을 하면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가 이를 코트에서 구현하는 식이죠.”
선뜻 동의할 수 없었다. 프런트(구단)가 현장(코칭스태프)에 대놓고 지시를 한다는 얘기 아닌가. 종목을 불문하고 국내 프로스포츠에서는 프런트가 현장에 간섭하면 안 된다는 정서가 강하다. 프런트의 역할은 선수들이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그쳐야 하고, 경기는 감독이 책임지는 게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고 있다. ‘○○○ 감독의 야구’ ‘○○○ 감독의 농구’처럼 팀 색깔은 감독에 따라 달라진다. 감독이 바뀌면 팀 색깔도 바뀐다. 김 총재는 그 점이 아쉬운 듯했다. 그의 계속된 얘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구단의 모기업들은 주 고객층이 다르다. 과자를 만드는 기업,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기업, 보험을 다루는 기업의 고객들은 연령대부터 차이가 난다. 구단들은 모기업 고객들의 성향을 분석해 이에 어울리는 농구를 보여줘야 한다. 일반 제품은 검수를 통해 불량품을 걸러낼 수 있지만 스포츠라는 제품은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에 불량품이 그대로 전달된다. 성공률이 떨어지는 선수들의 외곽슛 난사, 비신사적인 파울, 경기를 쓸데없이 지연시키는 행위 등이 ‘불량품’이다. 이를 줄이고 양질의 제품을 제공할 수 있도록 프런트가 현장에 적극적으로 주문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다면 왜 그동안 ‘감독의 색깔’은 짙어도 ‘구단의 색깔’은 찾아보기 어려웠던 걸까. 결과만 따지는 성적 지상주의가 지나치게 팽배하기 때문일 것이다.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고 우승만 하면 그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불량품이 많아도 문제를 삼지 않는다. 김 총재는 이런 말도 했다. “기업은 순익을 내는 것도 좋지만 매출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 승리가 순익이라면 승패를 떠나 많은 관객이 경기장을 찾도록 그 팀만의 농구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 박리다매라고나 할까. 모든 팀이 우승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김 총재는 스타 선수로, 명지도자로, 금융인으로, 스포츠 행정가로 모두 성공적인 길을 걸어왔다. “그냥 들어나 보라”고 웃으며 한 말이었지만 그 말에 무게감이 느껴졌던 이유다. 김 총재의 ‘과자론’은 그의 임기 중에 얼마나 먹혀들 수 있을까. 갑자기 감독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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