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저무는 저녁이면 강변 송신탑 꼭대기에 오르곤 하지 바람을 거슬러 비껴 오르면 굽이치는 저 강물의 진짜 거처가 어딘지 알 수 있지 허공의 한기(寒氣)도 건드리지 못하는 그리움의 정체도 만져지지 더 높은 곳이 도심으로 많이도 내려다보이지만 여기는 정상, 거미처럼 착 달라붙어 내 몰락의 정상을 소리 높여 노래할 수 있지 들어주는 이 누구 없고 분주한 세상 풍경은 아득히 멀고 혼자일 때 파탄의 신호는 더욱 감미로워 귀만 가만 열어두고 저 격세(隔世)의 송신음을 좇아 무한의 아래로 내려가지 전율에 떨면서 사랑이라는 혼선(混線)의 물바람을 가르면서 몸 구석구석에서 타락을 꿈꾸는 섬모들이 길을 내주지 잊혀지지 않는 저녁의 어두운 시간들은 언제나 탑의 철침으로 먼저 와 꽂히고 순간의 몰핑으로 아우성치며 절정에 오르지 밀어내도 밀쳐지지 않고 배척해도 굴복하지 않는 시간의 고압선을 타고 종생(終生)을 향해 치닫지 아, 그러면 그제야 환히 보이는 것 일몰의 흔적들 뒤로 간절히 내게 구애하는 것 기억이 형질 변화를 일으키며 내지르는 환희 비루한, 너무나 비겁한
어느 날 강변을 거닐던 화자는 송신탑 아래서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을 테다. 꽁초를 강물에 던진 뒤 문득 송신탑을 올려다봤을 테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송신탑을 기어올랐을 테다. 송신탑에 회오리치는 ‘바람을 거슬러 비껴’ 올라 꼭대기에 다다른 화자. ‘굽이치는 저 강물의’ 끝과 끝이 한눈에 펼쳐지고 강 건너 도심의 빌딩들이 내려다보인다. 강바람 속 송신탑 꼭대기에 위태롭게 매달려 절규하듯 외치는 화자의 ‘야호!’ 소리 들릴 듯하다. ‘여기는 정상, 거미처럼 착 달라붙어/내 몰락의 정상을 소리 높여 노래할 수 있지’, 그렇게 화자는 ‘해 저무는 저녁이면/강변 송신탑 꼭대기에 오르곤 하지’ 하게 됐을 테다. ‘격세(隔世)의 송신음’이나 ‘사랑이라는 혼선(混線)의 물바람’에서 화자의 퇴행 욕구에 이르는 원망이 읽힌다. 세상은 화자가 원치 않는 모양으로 화자에게 아랑곳없이 분주하게 변했다. 되는 일도, 되게 하려는 의욕도 없는 화자는 사랑도 순탄치 않다. 그래서 절박한 짐승처럼 송전탑에 오르면 이 몰락의 왕자에게 ‘잊혀지지 않는 저녁의 어두운 시간들’이 벼락처럼 꽂히는데, ‘순간의 몰핑으로 아우성치며 절정에 오른단다’. 자기 파괴적 충동으로 치닫는 그 쾌감이 다시 또 현란하게 생의 충동으로 뒤바뀌는 모핑(morphing)! ‘비루한, 너무나 비겁한’, 그러나 너무나 달콤한 환희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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